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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국립박물관 건축이 서울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90년 동안 쌓인 공간 기획의 힘

도쿄국립박물관 건축이 서울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90년 동안 쌓인 공간 기획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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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내용]

도쿄국립박물관은 한 번에 완성된 박물관이 아니라 1909년부터 1999년까지 시대마다 다른 건축 언어가 차곡차곡 더해진 공간이다. 효케이관, 본관, 동양관, 호류지보물관은 각각 서구화, 정체성 회복, 동양미의 해석, 보존과 공개라는 고민을 건축으로 남겼다.


[내용]


도쿄국립박물관 건축 특징을 처음 마주하면 단순히 “오래된 박물관이구나” 하고 지나치기 어렵다. 우에노 공원 북쪽의 한 부지 안에 1909년부터 1999년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건물이 차례로 놓여 있고, 그 사이에는 단순한 증축이 아니라 앞선 건물과 다음 건물이 서로 대화하는 듯한 긴장이 흐른다.

서울의 많은 건축이 새로 짓고, 고치고, 빠르게 바꾸는 방식으로 도시의 속도를 보여준다면, 도쿄국립박물관은 조금 다르다. 이곳은 기존 건물을 쉽게 지우지 않고, 그 옆에 다음 시대의 답을 조심스럽게 얹어왔다. 그래서 도쿄국립박물관은 건물 하나를 보는 장소라기보다, 90년에 걸친 공간 기획의 판단을 읽는 장소에 가깝다.

도쿄국립박물관이 특별한 이유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처음부터 완벽한 마스터플랜으로 다섯 개 건물을 한꺼번에 세운 공간이 아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건물이 하나씩 더해졌고, 그때마다 기획자들은 같은 질문 앞에 섰다. 이미 무언가가 들어선 땅 위에 다음 건물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건축이 단순히 외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선 시대의 건물이 만든 분위기, 축선, 시야, 재료감, 상징성을 모두 읽은 뒤 그다음 건물이 들어서야 했다. 무심코 새 건물을 놓으면 부지는 흐트러지고, 지나치게 옛 건물에만 맞추면 자기 시대의 목소리를 잃는다.

왼쪽에는 1909년의 효케이관, 정면에는 1938년의 본관, 오른쪽에는 1968년의 동양관이 자리한다. 여기에 1999년의 호류지보물관과 헤이세이관까지 더해지면서 이 부지는 박물관이면서 동시에 시대별 건축 언어가 쌓인 거대한 기록물이 되었다.

효케이관은 메이지 시대가 유럽을 향해 보낸 선언처럼 보인다

도쿄국립박물관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본관이 아니라 효케이관이다. 1909년, 훗날 다이쇼 천황이 되는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해 세워진 이 건물은 일본이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 했던 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품고 있다.

네오바로크풍 외관, 대칭적인 구성, 입구의 사자 조각, 세월을 먹고 푸르게 변한 돔은 당시 일본이 유럽식 건축을 얼마나 강하게 의식했는지 보여준다. 막상 앞에 서면 장식이 많은데도 가볍지 않고, 오히려 국가적 메시지를 정면으로 밀어붙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은 이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당시 박물관의 상징이던 벽돌조 건물이 무너지면서, 서양식 건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효케이관은 살아남았지만, 그 이후 들어설 건물들은 더 이상 단순한 서구 모방으로 갈 수 없었다.

본관은 무너진 서양식 건축 위에 일본식 정체성을 덧씌운 건물이다

1938년에 완성된 도쿄국립박물관 본관은 관동대지진 이후의 답처럼 등장한다. 설계 공모를 거쳐 지어진 이 건물에는 단순한 박물관 재건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무너진 서양식 벽돌 건축 대신, 일본은 무엇을 자기 건축의 얼굴로 삼을 것인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서양식 콘크리트 구조 위에 일본식 지붕을 얹은 재관양식이다. 양복을 입고 갓을 쓴 사람처럼 어딘가 어색하지만, 바로 그 어색함이 당시 일본 사회의 정체성 고민을 드러낸다. 이 건물을 단순히 전통적인 일본풍 박물관으로만 보면, 그 안에 담긴 시대적 불안과 정치적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본관 내부의 대리석 계단과 웰홀은 지금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중앙 홀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이어지는 아치, 돌바닥에 울리는 발소리, 넓게 펼쳐지는 계단이 몸을 먼저 압도한다. 이 공간이 여러 광고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인 이유도 이해된다.

전시 동선 역시 일본 미술의 흐름을 몸으로 따라가게 만든다. 1층과 2층을 이동하며 조각, 도자, 칠기, 일본미의 연대기를 지나가다 보면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기억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양관은 콘크리트로 번역한 실크로드의 창고 같다

1968년에 들어선 동양관은 본관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고도성장기의 일본이 자신을 아시아의 중심으로 인식하던 시기, 동양관은 그 자신감을 건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설계자는 다니구치 요시로. 전통과 모더니즘을 한 건물 안에 어떻게 공존시킬 것인가를 오래 고민한 인물이다.

동양관의 외관은 얼핏 콘크리트 건물인데, 자세히 보면 목조 건축의 기억이 배어 있다. 깊게 돌출된 처마, 기둥 상단의 형태, 격자 루버, 은근한 박공 지붕의 기울기까지 모두 전통 건축의 감각을 현대 재료로 옮긴 장치처럼 보인다.

내부는 더 흥미롭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이어지는 구조 사이에 중간층을 끼워 넣은 스키플로어 방식이라, 관람 동선이 단순히 위아래로 나뉘지 않는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천장 높이와 빛의 온도가 달라지고, 공간은 마치 동굴처럼 깊어졌다가 다시 열리는 리듬을 만든다.

이 동선은 중국, 한반도, 동남아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이집트로 이어지는 동양 미술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든다. 전시를 보며 걷다 보면 동양관이 단순한 전시실이 아니라 실크로드를 압축한 건축적 여행처럼 느껴진다.

호류지보물관은 건축이 스스로 조용해지는 방식으로 유물을 살린다

1999년에 완성된 호류지보물관은 도쿄국립박물관 안에서도 가장 조용한 긴장을 가진 건물이다. 이곳은 나라 호류지가 황실에 헌납한 300여 점의 유물을 보관하고 공개하기 위한 공간이다. 7~8세기 아스카·나라 시대의 금동불과 목조 조각처럼 예민하고 오래된 보물이 중심이다.

설계자는 다니구치 요시오다. 동양관을 설계한 다니구치 요시로의 아들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전통과 모더니즘을 나란히 세우는 방식으로 답을 냈다면, 아들은 호류지보물관에서 건축이 최대한 조용해지는 길을 택했다. 유물이 말하게 하고, 건물은 뒤로 물러나는 방식이다.

입구 앞의 얕고 넓은 수반, 대각선으로 놓인 석제 통로, 정면으로 곧장 밀고 들어가지 않게 만드는 동선은 모두 의도된 장치다. 직선으로 들어가고 싶은 몸을 살짝 비틀게 만들고, 그 사이에 물과 빛, 건물의 반사가 시야에 들어온다.

내부는 유리와 알루미늄의 현대적 외피 안에 라임스톤 전시 박스를 넣은 이중 구조다. 온도, 습도, 자외선을 통제하면서도 관람객에게 유물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전 공간이 일주일에 한 번만 열릴 정도로 보존에 민감했다면, 새 보물관은 보존과 공개라는 충돌하는 조건을 건축적으로 풀어낸 셈이다.

도쿄국립박물관을 다르게 보는 방법

건물을 예쁘다, 웅장하다 정도로만 보지 말고 “왜 이 위치에, 왜 이 시기에, 왜 이런 형태로 들어왔을까”를 따라가면 공간이 훨씬 입체적으로 읽힌다.

헤이세이관까지 더해지며 도쿄국립박물관은 시대의 층을 완성한다

본관 뒤편의 헤이세이관은 1999년에 완공됐다. 나루히토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해 기획된 건물이라는 점에서, 1909년 다이쇼 천황의 결혼을 기념해 세워진 효케이관과 묘하게 이어진다. 90년의 간격을 두고 황실의 두 세대가 한 부지 안에 건축으로 남은 셈이다.

이런 구성이 흥미로운 이유는 도쿄국립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보관하는 공간을 넘어, 일본이 각 시대마다 어떤 상징을 건축으로 남기려 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효케이관은 서구를 향한 열망, 본관은 재난 이후의 정체성, 동양관은 아시아를 향한 시선, 호류지보물관은 보존과 공개의 균형을 말한다.

막상 이 흐름을 알고 경내를 걸으면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건물 하나하나가 따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선 건물이 던진 질문에 다음 건물이 조용히 답하는 구조처럼 느껴진다.

도쿄 건축 여행에서 이곳을 먼저 봐야 하는 이유

도쿄국립박물관은 유명한 전시품 때문에만 갈 곳이 아니다. 도쿄 건축 여행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곳은 도시를 읽는 출발점에 가깝다. 새것만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과 협상하며 다음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울과 도쿄의 차이를 단순히 스카이라인이나 규모로만 비교하면 놓치는 것이 많다. 중요한 것은 오래된 것을 남기는 방식, 새 건물이 들어올 때 기존 질서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감각을 남기는지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진짜 매력은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을 통해 시대의 판단이 보인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곳을 보고 나면 도쿄의 다른 건물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걸 누가 왜 이렇게 지었을까”라는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효케이관의 녹색 돔, 본관의 웰홀 계단, 동양관의 콘크리트 기둥, 호류지보물관의 비틀어진 진입로는 모두 각 시대의 기획자가 남긴 답이다. 그리고 그 답들이 한 부지 안에 나란히 서 있기 때문에 도쿄국립박물관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와 건축을 이해하는 꽤 좋은 교과서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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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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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간 I. M. 페이, 대만에 남은 왕다홍: 세 건물로 보는 대만 현대건축

세계로 간 I. M. 페이, 대만에 남은 왕다홍: 세 건물로 보는 대만 현대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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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이, 같은 학교, 같은 스승.

그런데 한 사람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대만에 남아 한 시대의 건축을 만들었습니다.

1917년, 중국에서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명은 4월 광저우에서, 또 한 명은 7월 베이징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중국 최고 명문가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상하이와 쑤저우를 오가며 자랐고, 10대에 서양으로 건너가 유럽과 미국의 공기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같은 도시, 같은 학교, 같은 스승 앞에 앉게 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원.

바우하우스를 창시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교실이었습니다.

한 명은 훗날 세계가 I. M. 페이라고 부르게 될 건축가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하며 20세기 대표 건축가 중 한 명이 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왕다홍입니다.

세계로 간 I. M. 페이, 대만에 남은 왕다홍: 세 건물로 보는 대만 현대건축 - 건축 1

한국에는 비교적 낯선 이름이지만, 대만에서는 현대건축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축가입니다.

두 사람의 출발선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아버지가 만든 두 건축가의 다른 무대

I. M. 페이의 아버지는 은행가였습니다.

정치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금융계에 몸담은 인물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페이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습니다.

중국이 혼란에 빠지는 동안 그는 미국에 남았고, 이후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반면 왕다홍의 아버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왕충후이는 중화민국의 초대 외교부장이자 장제스의 최측근이었습니다.

권력의 중심에 있던 아버지를 따라 왕다홍은 1952년 대만으로 건너왔고, 그 섬이 그의 건축적 무대가 됩니다.

한 아버지는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고,

다른 아버지는 권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서로 다른 무대 위에서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I. M. 페이는 세계를 향해 나아갔고,

왕다홍은 대만이라는 섬 안에서 자신의 건축을 만들어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만에서 만날 수 있는 왕다홍의 세 건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그가 대만에서 처음 지은 자신의 집,

두 번째는 국립대만대학교 학생활동센터,

세 번째는 권력과 타협하며 완성한 국부기념관입니다.


1. 왕다홍의 집

가장 자유롭게 자신을 담아낸 작은 집

세계로 간 I. M. 페이, 대만에 남은 왕다홍: 세 건물로 보는 대만 현대건축 - 건축 3

왕다홍이 대만에 와서 처음 지은 건물은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1953년, 30대 중반의 왕다홍은 아버지가 사준 약 90평의 땅 위에 26평 남짓한 작은 집을 설계했습니다.

하버드를 졸업한 지 10년이 조금 넘은 시기였습니다.

이 집은 지금 원래의 위치에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타이베이 파인아트 뮤지엄 뒤편에 레플리카 형태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전시장뿐만 아니라, 대만 현대건축의 출발점 같은 이 작은 집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집

왕다홍의 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높은 담장입니다.

도로에서는 집 내부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바깥에서는 벽돌 담장만 보이고, 그 안에 어떤 공간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이 방식은 필립 존슨의 하버드 시절 집, 이른바 ‘Thesis House’를 떠올리게 합니다.

필립 존슨은 하버드에서 졸업 논문 대신 자신의 집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집 역시 외부와 단절된 담장 안에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 언어를 담은 공간이었습니다.

왕다홍도 그 집을 보았고, 아마 큰 자극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다홍의 집은 단순히 서구 모더니즘을 복제한 집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왕다홍이 어린 시절 쑤저우에서 보고 자란 중국 정원의 감각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긴 창, 작은 연못, 둥근 월동창, 대나무가 보이는 장면들.

이 요소들은 집 안에 동양적 감각을 조용히 심어놓습니다.

세계로 간 I. M. 페이, 대만에 남은 왕다홍: 세 건물로 보는 대만 현대건축 - 건축 5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영향, 그리고 왕다홍식 변주

왕다홍은 하버드에서 발터 그로피우스에게 배웠지만, 실제로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의 집에는 문이 거의 없습니다.

벽은 공간을 막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공간을 느슨하게 나누는 판처럼 쓰입니다.

이런 방식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나 판스워스 하우스에서 볼 수 있는 미스의 공간감과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왕다홍은 대만의 현실 속에서 그것을 다르게 풀어야 했습니다.

당시 대만에서는 강철 같은 현대적 재료를 마음껏 쓰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철 대신 벽돌과 목재를 사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집은 서구 모더니즘을 따르면서도, 조금 더 따뜻하고 아시아적인 분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로 간 I. M. 페이, 대만에 남은 왕다홍: 세 건물로 보는 대만 현대건축 - 건축 9


빨간색, 검은 바닥, 그리고 직접 설계한 가구

집 안으로 들어가면 왕다홍이 좋아했다는 빨간색이 곳곳에 보입니다.

입구에는 빨간색 옷장이 있고, 문이나 손잡이, 가구에도 강한 색의 포인트가 들어갑니다.

바닥은 어둡고 반질반질한 타일입니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왕다홍이 어느 날 구두약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닦고 난 부분이 유난히 아름답게 빛났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바닥을 구두약으로 계속 닦았다고 합니다.

기능과 미감 사이에서 발견한 우연한 아름다움이 집의 분위기가 된 셈입니다.

가구 역시 대부분 왕다홍이 직접 설계했습니다.

의자, 조명, 침대, 수납장 등은 미스의 가구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어딘가 중국적인 감각을 품고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디테일입니다.

가구의 끝선이 바닥 타일 줄눈과 맞고, 침대 크기도 타일 모듈과 맞춰져 있습니다.

문, 수납장, 바닥, 벽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서 안에서 정리됩니다.

작은 집이지만, 건축가가 얼마나 집요하게 공간을 다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가족에게는 놀이터였던 집

이 집은 건축사적으로는 대만 모더니즘의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하지만 왕다홍의 가족에게는 그저 생활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높은 담장 안쪽은 완전히 가족만의 세계였습니다.

바깥 사람들은 이 집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늘 궁금해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연못도, 중정도, 문 없는 공간도 모두 놀이의 일부였습니다.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고, 문이 없는 집 안을 뛰어다니며 놀았던 기억들이 전해집니다.

건축가의 실험이자, 한 가족의 일상.

왕다홍의 집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었습니다.


2. 국립대만대학교 학생활동센터

바우하우스의 언어가 학생들의 일상과 만나다

세계로 간 I. M. 페이, 대만에 남은 왕다홍: 세 건물로 보는 대만 현대건축 - 건축 6

두 번째로 찾아간 건물은 국립대만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학생활동센터입니다.

국립대만대학교는 일본 통치 시기 제국대학으로 출발한 학교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학교와 비슷한 상징성을 가진 대만의 대표 대학입니다.

이 캠퍼스 안에 왕다홍이 설계한 학생활동센터가 있습니다.

1961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왕다홍의 이름을 대만 건축계에 널리 알린 작품입니다.


장식을 걷어낸 기하학적 건축

학생활동센터는 첫눈에 봐도 장식적인 건물이 아닙니다.

건물은 단순한 기하학으로 구성되어 있고, 반복되는 창과 선, 구조가 정직하게 드러납니다.

백색의 절판 지붕, 격자형 창, 검정과 빨강의 대비, 곳곳에 들어간 파란색 포인트가 강한 인상을 만듭니다.

바우하우스가 추구했던 기능주의적 태도가 이 건물 안에 분명하게 들어 있습니다.

장식으로 건물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기능, 사용 방식 자체가 형태가 되는 건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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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실제로 쓰는 공간

이 건물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형태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은 학생들이 실제로 머물고, 밥을 먹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쉬는 공간입니다.

즉 건축이 사람들의 일상과 직접 만나는 장소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동아리방들이 이어집니다.

피아노 연습실, 보드게임 클럽, 학생회 공간 등 다양한 활동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건물 중앙에는 작은 중정이 있고, 물소리와 빛이 공간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이 중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머물고, 바라보는 공간의 중심입니다.

왕다홍은 모더니즘의 언어를 사용했지만, 그 안에 동양 건축에서 중요한 비워진 중심, 즉 중정의 감각을 함께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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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이 살아 있는 건물

학생활동센터를 둘러보면 작은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문 손잡이의 색, 창의 비례, 방충망이 달린 문, 슬라이딩 방식으로 내려오는 창, 상점의 셔터까지 하나의 디자인 언어 안에서 정리되어 있습니다.

특히 빨간색과 검은색의 조합은 왕다홍의 건축적 색감처럼 보입니다.

왕다홍의 집에서도 보였던 빨간색은 이 건물에서도 반복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오늘날 이 건물 안에 맥도날드 같은 현대적 상업 공간이 들어와 있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건물이 워낙 명확한 질서와 강한 골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기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공공건축의 힘입니다.


3. 국부기념관

권력과 싸우며 완성한 기념비적 건축

세계로 간 I. M. 페이, 대만에 남은 왕다홍: 세 건물로 보는 대만 현대건축 - 건축 7

세 번째 건물은 타이베이의 국부기념관입니다.

국부기념관은 쑨원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입니다.

타이베이 101과 타이베이 돔이 가까운 곳에 있어, 지금은 타이베이 도심의 중요한 장면을 이루는 건축입니다.

왕다홍은 1965년 국부기념관 설계 공모에서 1위를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너무 서양적이다”

왕다홍의 초기 설계안은 지금의 국부기념관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그는 중국 건축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싶어 했습니다.

전통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는, 철근콘크리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중국적 건축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장제스 측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너무 서양적이다.”

“더 중국적이어야 한다.”

이 요구로 인해 왕다홍은 설계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했습니다.

단순히 일부 장식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건물의 인상과 방향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왕다홍은 훗날 이 작업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로 말했다고 합니다.


콘크리트로 만든 중국적 기념관

세계로 간 I. M. 페이, 대만에 남은 왕다홍: 세 건물로 보는 대만 현대건축 - 건축 8

완성된 국부기념관은 전통 중국 건축의 형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큰 지붕, 기념비적인 축, 넓은 광장, 강한 대칭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료는 전통 목구조가 아닙니다.

왕다홍은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했습니다.

기둥과 보, 벤치와 주변 요소들까지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습니다.

전통적 형태를 현대 재료로 번역한 셈입니다.

여기서 왕다홍의 고민이 드러납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건축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현대건축가였습니다.

다만 대만이라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그리고 국가 기념관이라는 상징성 속에서, 전통과 현대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했습니다.

그 균형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공모와 왕다홍의 상처

왕다홍의 건축 인생에서 비슷한 사건은 또 있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설계 공모에서도 왕다홍은 1등을 했지만, 장제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결국 원안대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왕다홍은 자신의 설계안을 완전히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고, 결국 그 프로젝트는 그의 손을 떠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설계도가 오랫동안 거의 사라진 것처럼 여겨졌다는 점입니다.

이후 하버드 시절 동료가 보관하고 있던 일부 자료를 통해서야 그 안의 흔적이 다시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왕다홍이 단순히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 아니라, 시대와 권력의 압력 속에서 자신의 건축을 지키려 했던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세 건물이 보여주는 왕다홍의 세 얼굴

왕다홍의 세 건축은 서로 전혀 다른 조건에서 만들어졌습니다.

1. 자신의 집

누구의 요구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건축을 가장 온전하게 담아낸 공간입니다.

이 집에서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영향, 필립 존슨과의 관계, 쑤저우 정원의 기억, 왕다홍 개인의 취향이 모두 드러납니다.

가장 작지만 가장 순수한 건축입니다.

2. 국립대만대학교 학생활동센터

이 건물은 왕다홍의 모더니즘이 공공건축으로 확장된 사례입니다.

바우하우스의 언어, 기하학적 질서, 기능적 구성, 학생들의 실제 사용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건축이 사람들의 일상과 만나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3. 국부기념관

이 건물은 왕다홍이 권력과 충돌하면서 완성한 건축입니다.

그가 하고 싶었던 건축과 국가가 요구한 건축 사이에서 타협과 저항이 동시에 담긴 결과물입니다.

가장 크고 기념비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복잡한 건축입니다.


왕다홍이 대만 현대건축에 남긴 것

왕다홍의 건축은 단순히 예쁜 건물을 남긴 것이 아닙니다.

그는 대만에 현대건축의 언어를 들여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서구식으로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배웠고, 그로피우스의 교실에 앉았으며, 필립 존슨의 집에서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쑤저우 정원의 기억, 중국적 공간감, 대만의 재료와 환경을 자신의 건축 안에 넣었습니다.

그 결과 왕다홍의 건축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섭니다.

서구적이지만 완전히 서구적이지 않고,

중국적이지만 전통의 복제는 아닙니다.

그는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계속 고민한 건축가였습니다.


결론: 세계로 간 페이, 섬에 남은 왕다홍

I. M. 페이와 왕다홍은 같은 시대, 같은 배경, 같은 스승에게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자신의 건축을 펼쳤고,

다른 한 사람은 대만이라는 섬 안에서 현대건축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페이의 건축은 세계사 속에서 빛났고,

왕다홍의 건축은 대만 현대건축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왕다홍의 집, 국립대만대학교 학생활동센터, 국부기념관은 각각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한 집.

모더니즘을 일상과 연결한 대학 건물.

권력과 충돌하며 완성한 국가 기념관.

이 세 건물을 함께 보면 왕다홍이라는 건축가가 조금씩 보입니다.

그는 화려하게 세계를 누빈 건축가는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만이라는 장소 안에서, 서구 모더니즘과 중국적 감각, 그리고 정치적 현실 사이를 통과하며 자신만의 건축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왕다홍의 건축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고민입니다.

현대적이면서도 지역적일 수 있는가.

전통을 반복하지 않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가.

건축가는 권력의 요구 앞에서 어디까지 자신의 생각을 지킬 수 있는가.

왕다홍의 건축은 지금도 그 질문을 조용히 던지고 있습니다.


#왕다홍 #왕다홍하우스 #대만건축 #타이베이건축 #대만여행 #건축답사 #IM페이 #국립대만대학교 #국부기념관 #타이베이파인아트뮤지엄 #현대건축 #건축가이야기

K-팝, 소비를 넘어 경험이 되다

K-팝, 소비를 넘어 경험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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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은 음악을 넘어 하나의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이제 팬들은 단순히 음악을 듣고 굿즈를 구매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체험하며 아티스트의 세계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4년 만에 세 번째 미니 앨범으로 돌아온 블랙핑크는 몰스킨과의 협업을 통해 노래와 메시지를 기록의 언어로 재해석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였다. 해당 에디션은 노래 가사를 적용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블랙과 핑크의 강렬한 대비, 커스터마이징 요소를 통해 완성됐으며 팬들이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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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몰스킨]

 

국립중앙박물관과의 협업 역시 주목할 만하다. 블랙핑크는 오디오 도슨트와 리스닝 세션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을 소개했고 팬들이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통해 문화유산을 경험하도록 했다. 음악 산업에 머물렀던 팬덤의 활동이 문화유산, 교육, 공공기관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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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YG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과 파르나스호텔의 협업 또한 공간 경험으로 확장된 K-팝을 보여준다. ‘BTS THE CITY ARIRANG SEOUL’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패키지는 호텔 객실부터 굿즈, 식음료 서비스까지 하나의 통합된 브랜드 경험으로 구성됐고 팬들로 하여금 실제 공간 속에서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체험하도록 했다. 공간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체험형 소비’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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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파르나스호텔]

 

경험경제는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이 된다. 위와 같은 K-팝의 다양한 확장 사례는 경험 자체가 소비의 핵심 가치가 되는 경험경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K-팝의 확장은 SNS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강화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티스트는 단순한 창작자가 아니라 브랜드이자 세계관의 중심이 되고 팬덤은 음악을 넘어 공간, 문화, 산업 전반을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개인의 취향이 곧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이다. 

팬덤의 구조를 사회·경제적으로 분석한 책 『팬덤의 시대』는 팬덤을 단순한 열성 소비 집단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팬덤에 대해 문화를 생산하고 시장을 형성하는 경제 주체라 해석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확산, 재해석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블랙핑크의 굿즈, 국립중앙박물관과의 협업, BTS의 호텔 협업 프로젝트는 모두 책에서 언급되는 팬덤 경제의 구체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팬덤은 이제 음악 재생을 넘어 문화를 소비하고 경험하며 세계관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책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에서는 소비가 상품 중심에서 경험과 의미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말하며 개인의 취향이 소비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흐름에 대한 분석을 지속적으로 제시한다.

결국 현대사회에서는 무엇을 사느냐가 아닌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소비의 기준이 되고 있다. K-팝은 현대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이며 K-팝 팬덤은 단순한 문화 소비 집단을 넘어 현대 소비 구조와 문화 산업 전반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출처 : 독서신문(https://www.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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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를 '보다' 그리고 '읽다'…국립현대미술관 미술도서관

데미안 허스트를 '보다' 그리고 '읽다'…국립현대미술관 미술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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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을 찾아서㊴]


데미안허스트 전시장 입구(로비).

데미안허스트 전시장 입구. (사진=고규영)

뒤엉킨 생각의 실타래를 풀기

지난주 데미안 허스트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본 후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엉켰다. 한 주에 두 번이나 이곳과 그 옆의 미술도서관을 다시 찾은 이유다.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Nothing is True, but Everything is Possible)”. 전시의 제목처럼 그가 던진 묵직한 화두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엉켜있었다.

그동안 허스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수족관 속 상어,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해골, 잘린 소머리와 파리로 만든 작품. 미술계의 엔터테이너, 상업적 아티스트.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좁디좁은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이번 전시를 보며 깨닫게 되었다. 35년에 걸친 그의 작품 여정을 따라가며, 피카소의 젊은 시절 구상화를 본 후 그의 추상화를 다시 보았을 때, 그리고 고흐의 어둡고 강렬한 그림을 보다가 밝고 환한 그림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치열한 사유의 시간을 거쳐온 예술가의 고민이 보였다.

데미안허스트, 신작 꽃(The New Arrival Blossom), 2019

데미안허스트, 신작 꽃(The New Arrival Blossom), 2019

벚꽃이 열어준 또 다른 세계

전시관 거의 끝부분에서 마주친 그의 벚꽃 연작 중 하나인 4점의 ‘신작 꽃(The New Arrivals Blossom)’ 앞에서 오래 멈춰 섰다. 미술관 밖의 봄날, 지천으로 피어난 벚꽃과 오버랩되며 가슴으로 눈으로 깊이 박혔다.

오래전 암스테르담 고흐 박물관에서 ‘아몬드 나무’를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음산하고 어둡고 휘몰아치는듯한 거친 필치의 그림만 알고 있던 내게, 환하게 빛을 발하는 아몬드 꽃은 충격이었다. 허스트의 벚꽃도 그랬다.

데미안허스트,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위하여(Contemplating the Infinite Pwer and the Glory of God) 2008 작품 일부분을 확대한 것(수천마리의 실제 나비로 제작).데미안허스트,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위하여(Contemplating the Infinite Pwer and the Glory of God) 2008 작품 일부분을 확대한 것(수천마리의 실제 나비로 제작). 

허스트에게 벚꽃은 짧은 시간 화려하게 피었다가 금방 사라지는, 삶의 생명과 죽음, 아름다움과 소멸의 의미를 담는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슬프도록 아름다운 벚꽃의 비장미와 일치한다.

멀리서 보면 누구나 인정할 벚꽃 구상화의 모습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화려한 물감의 폭발 같은 추상화로 다가온다. 우리 삶을 생명으로만 규정할 수 없고 죽음과 함께 연결하여 의미를 짓는 것처럼, 이 벚꽃 작품에서는 구상과 추상이 만나고 삶과 죽음이 만난다.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속 나비가 상징하는 부활의 의미와도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질문을 품고 미술도서관으로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With Every Question comes a Doubt)”.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We live in Time)”. “침묵의 사치(The Luxury of Silence)”. 전시의 섹션별 주제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예술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우리 삶에 주는지? 데미안 허스트의 독백처럼 약과 의학의 효과는 믿으면서도 예술의 치유의 힘을 믿지 못하는 세상에 그가 던진 직구를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논리가, 과학이 줄 수 없는 위로를 예술이 줄 수 있다고 믿어왔고 믿고 있다.

데미안 허스트가 던진 묵직한 화두를 머리에 이고 미술관 옆에 위치한 미술도서관으로 향했다. 삼청동과 북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한 달에 4~5번씩 방문했는데, 어떻게 이 예술 도서관을 모른 채 지나쳤을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창가에서

미술도서관 삼면의 유리 통창을 통해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정문의 정원 쪽 창으로는 봄을 알리는 벚꽃이 개화하고 있었고, 반대편 유리 통창 너머로는 멋스럽게 늘어진 노송 옆으로 조선시대 건축물인 경근당과 옥첩당이 모던한 국립현대미술관 건축과 어우러져 고즈넉하면서도 기품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연이어 있는 또 다른 창으로는 막 꽃을 피우는 벚꽃나무와 함께 기와 담장이 늘어서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미술도서관에서 바라본 도서관 외관과 정원. (사진=고규영)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미술도서관에서 바라본 도서관 외관과 정원. (사진=고규영)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미술도서관 서가에서 본 경근당. (사진=고규영)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미술도서관 서가에서 본 경근당. (사진=고규영)

과거와 현대의 시간이 마주하며 연결되어 있었고, 미술도서관의 온갖 예술 서적을 통하여 미래로 연결을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삼면의 유리 통창으로 들어오는 작품 같은 경치들이 이 미술도서관의 아트적 아우라를 더 빛내주고 있었다.

도서관은 크게 4곳의 영역으로 나뉘어 서가와 책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창가에 놓인 책상은 삼면에 책이 있는 서가가 배치되어 있어, 마치 개인 전용 공간에 들어온 것처럼 통창으로 들어오는 자연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을 연출했다.

도서관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서가의 책들이 모두 예술 서적으로 되어 있어 예술 서적의 규모만으로는 여느 대형 도서관보다 더 많은 예술 서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색의 공간에서 다시 만난 허스트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도서관에 비치된 데미안 허스트의 커다란 도록은 다시 한번 찬찬히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시간 단위로 예약하여 입장하는 전시관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눈으로 찍듯이 작품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도록을 보며 달랠 수 있었다. 다양한 비평가들의 글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감상과 허스트의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비교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이라는 제목의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상어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라는 다이아몬드 해골. 이제는 단순히 충격적인 작품이 아니라, 죽음과 영생, 믿음과 욕망에 대한 깊은 사유의 결과물로 다가왔다.

또 다른 데미안 허스트의 페인팅만을 담은 도록에서는 전시관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던 벚꽃의 향연을 넘어 도시와 꽃을 주제로 한 눈부시도록 화려한 허스트의 최근 꽃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엉켜있던 생각도 정리하고 모르고 지냈던 작가의 새로운 작품도 찬찬히 들여다보며 조금씩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느낌이다. 이 미술도서관 사색의 공간이 주는 힘이라고 느껴진다.

휘날리는 벚꽃과 함께

도서관을 나서며 미술관 정원에 설치된 BTS의 신곡과 파란색 대형 설치 미술 작품이 봄바람에 휘날렸다. 그 너머로는 벚꽃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앞 정원, BTS 신곡과 함께 전시된 설치미술 러브쿼터(The City Love Quarter).

국립현대미술관 앞 정원, BTS 신곡과 함께 전시된 설치미술 러브쿼터(The City Love Quarter).

벚꽃이 흩날리는 이 봄, 생명과 죽음, 화려한 아름다움과 소멸의 주제를 무겁게 또 화려하게 전하는 허스트의 전시와, 그 허스트의 작품을 되새기고 사색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도서관의 모습이 영화처럼 꿈처럼 하나의 공간과 시간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전쟁으로 상처 받은 이 세상 저편의 땅에도 봄이 건네주는 푸른빛의 희망이 전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길을 지배한 제국 페르시아… ‘칼’ 아닌 ‘융합의 미감’으로 문명을...

길을 지배한 제국 페르시아… ‘칼’ 아닌 ‘융합의 미감’으로 문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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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국 페르시아의 미술 경영

페르시아 제국 수도 페르세폴리스의 대접견실 ‘아파나타’(기원전 486년∼기원전 465년경) 유적. 제국의 왕이 피지배민들을 접견하던 곳이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페르시아 제국 수도 페르세폴리스의 대접견실 ‘아파나타’(기원전 486년∼기원전 465년경) 유적. 제국의 왕이 피지배민들을 접견하던 곳이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대접견실 기둥은 제국의 융합 미술양식을 잘 보여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대접견실 기둥은 제국의 융합 미술양식을 잘 보여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눈도, 비도, 무더위도, 밤의 어둠도 우리 배달원이 맡은 임무를 신속히 완수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미국 연방우체국(USPS)의 사훈이다. 요즘 국내 배송·배달 플랫폼 업계의 지향점과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 좌우명의 기원은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즘 연일 뉴스에 오르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멀지 않은 이란 남부 파르스 지방에서 작은 도시국가로 시작해 기원전 6세기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한 페르시아가 그 기원이다.》



당시 페르시아는 오늘날 이란을 중심으로 튀르키예, 이집트, 이스라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까지 통치했다. 이렇게 방대한 지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오늘날로 치면 국토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이른바 ‘왕의 길(Royal Road)’이라고 불렸던 이 도로는 돌과 자갈로 다져진 포장도로였다. 도로 폭은 평균 6m, 길이는 2만7000km에 달했는데, 제국의 수도 수사에서 시작해 아시리아 중심지 니네베를 거쳐 튀르키예 서부 사르디스까지 이어졌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경이로운 점은 일반 여행자들은 걸어서 90일 정도 걸리는 이 길을 왕의 전령은 단 7일 만에 완주했다는 것이다. 길에는 약 24km 간격으로 111개의 역참이 있었고, 역참마다 말과 휴식시설, 식량, 물이 준비돼 있어 전령은 도착 즉시 말을 갈아타고 다음 역참으로 출발했다. 이들의 신속·정확함은 이웃 국가였던 그리스에 인상적으로 보였는지 여러 일화를 낳는다.



먼저 기원전 500년경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눈도, 비도, 무더위도, 밤의 어둠도 이 전령들이 정해진 코스를 최고 속도로 완주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적었다. 이 문구가 20세기 초 미국 뉴욕의 중앙우체국 건물 정면에 쓰이면서 현재 USPS의 신조로 남았다.


또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기하학을 쉽게 배우는 방법을 묻자 “폐하, 기하학에 왕도(王道)는 없사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여기서 ‘왕도’는 바로 페르시아 왕의 길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오늘날 “공부에 왕도는 없다”는 속담의 유래도 페르시아인 셈이다.


● 대제국 통치 원리 ‘팍스 페르시아나’



페르시아 ‘키루스 원통’(기원전 539년). ‘피정복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사진 출처 대영박물관·위키피디아

페르시아 ‘키루스 원통’(기원전 539년). ‘피정복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사진 출처 대영박물관·위키피디아인류 최초의 대제국으로 알려진 고대 페르시아(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경)는 4대 문명 중 황허 문명을 제외한 나머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을 통합했다. 참고로 한창때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는 550만 km²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로마 제국의 최대 영토보다도 큰 규모다.



페르시아가 보여준 복잡다단한 대제국의 통치 방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팍스 페르시아나(Pax Persiana)’이다. 페르시아의 보호 아래 제국의 다양한 민족들이 공동 번영을 누린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페르시아는 일찍부터 강력한 군사력과 함께 관용의 정치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포용 정책을 실천했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시조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39년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다음 자신의 공적을 진흙으로 만든 원통에 쐐기문자로 기록했다. ‘키루스의 원통’으로 알려진 이 문서에는 키루스 2세가 바빌로니아의 신 마르두크의 명령을 받아 바빌로니아를 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키루스 2세는 폭군을 몰아내고 바빌로니아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 왔기에 무혈 입성했다고 칭송한다.


이 문서에는 키루스 2세가 정복민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바빌로니아로 끌려온 여러 민족을 자기 고향으로 되돌려보냈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는 구약성서의 바빌론 유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사야서’에서 유대인을 해방시켜 ‘기름 부은 자’로 나오는 고레스 왕이 바로 키루스 2세이다.


● 권위 형상화한 수도, 페르세폴리스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면 통치자의 권위를 강력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페르시아는 확실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바로 제국의 신도시 페르세폴리스가 그것이다.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518년 무렵부터 터를 닦기 시작해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인 다리우스 1세 때 완성된다. 규모는 동서 450m, 남북 330m의 대지에 11m 높이의 석조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웅장한 궁궐을 조성했다.


현재 전체적으로 많이 파괴된 상태이지만, 외국 사절을 맞이하는 대접견실의 위용만으로도 페르세폴리스가 얼마나 크고 웅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접견실은 정사각형 모양의 건축물로, 한 변의 길이가 60m이고 내부 기둥 높이는 21m에 이른다. 이 거대한 기둥은 원래 36개 있었지만 현재 13개만 남아 있다.


대접견실의 기둥을 자세히 살펴보면, 페르시아인들은 광활한 제국의 영토 곳곳에 자리 잡은 다양한 건축 양식을 가져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융합해 새로운 제국 양식을 창출해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둥 받침대에 들어간 식물 문양 장식은 이집트에서 널리 사용되던 방식이다. 받침대 위 양뿔처럼 생긴 장식은 이오니아 양식이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건축 양식으로 볼 수 있다. 또 기둥 맨 위의 동물 장식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았다. 여러 민족에 자치권을 줬던 페르시아의 포용 정책은 미술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 활발한 교역의 상징 된 금화



페르시아 금화 ‘다릭’. 순금 8.4g, 지름 13mm로 제작됐으며 전면에 왕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출처 대영박물관·위키피디아

페르시아 금화 ‘다릭’. 순금 8.4g, 지름 13mm로 제작됐으며 전면에 왕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출처 대영박물관·위키피디아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술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경제다. 왕의 길을 통해 각 지역의 특산물이 활발히 거래됐는데, 이 같은 장거리 무역을 원활히 하기 위해 새로운 교환 수단을 발명해 냈다. 금화가 그것이다. 키루스 2세(기원전 550년∼기원전 530년경) 시기 페르시아에서 인류 최초의 금화가 만들어졌다. 역사적으로 이보다 앞서 금과 은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주화가 있었지만, 순도 높은 순금으로만 주화를 만든 나라는 페르시아였다.



키루스 2세 이후 페르시아를 통치했던 다리우스 1세는 8.4g짜리 금화를 제작해 제국 전체에 통용시켜 일종의 표준화폐로 만들었다. 금으로 화폐를 만든 뒤 표면에 지배자의 모습을 새겨 넣는 것은 페르시아인들이 처음 고안해 낸 방식이었다. 다리우스 1세 때 만들어진 금화에는 지휘봉과 활을 들고 있는 왕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모든 경제적 영광의 주인이 바로 왕 자신임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


황금은 지역을 넘어서도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금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국가나 지역 간 장거리 무역이 활발했다는 것을 뜻한다. 광활한 땅을 정복하고 여러 민족을 다스리면서도 그들과 공존을 꾀했던 페르시아는 교류를 가속화하기 위해 국제 화폐를 탄생시켰다.


● 사라질 위기에 놓인 페르시아 유산


페르시아는 이처럼 인류 최초의 대제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인류 문명을 한 단계 도약시킨 혁신을 다채롭게 보여줬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고대 문명과 그 이후 페르시아의 땅에 쌓여 온 역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늘 밤 하나의 문명이 완전히 사라질 것(A whole civilization will die tonight)”, “이란을 석기 시대로 되돌려 놓겠다(we‘re going to bring them back to the stone ages)” 같은 무시무시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종전을 이끌기 위한 압박이겠지만, 이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이란 땅에서 이뤄진 찬란한 페르시아 문명을 한번 되짚어 보고 싶었다.


다행히 종전에 대한 희망이 커지고 있다. 인류 최초의 대제국 페르시아를 계승하는 이란과 21세기 초강대국을 꿈꾸는 미국은 ‘세계 경영’이라는 공통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합리적인 대타협도 가능하지 않을까. 전 세계인들은 2주라는 양국의 휴전 시한(21일)이 끝나기 전에 기쁜 소식이 나오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리틀록 9총사와 트럼프 불러낸 클린턴[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32)

리틀록 9총사와 트럼프 불러낸 클린턴[손호철의 미국사 뒤집어보기](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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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록에 있는 아칸소 주청사 앞에는 인종 분리 정책에 저항해 이를 폐지시킨 9명의 아프리카계 소년·소녀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손호철 제공

리틀록에 있는 아칸소 주청사 앞에는 인종 분리 정책에 저항해 이를 폐지시킨 9명의 아프리카계 소년·소녀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손호철 제공



‘리틀록 9총사.’ 아칸소의 주도인 리틀록 주청사 앞 잔디밭에는 책을 들고 등교하는 9명 학생의 조각이 세워져 있다. 이들이 무슨 일을 했기에 주청사 앞에 조각까지 만든 것인가? 이들은 10대 어린 나이에 ‘계란으로 바위 치기’로 ‘학교에서의 인종 분리’라는 바위를 깨뜨렸다.


“야, 너희들 못 들어가!” 1957년 9월 4일, 아칸소 센트럴고등학교에 첫 등교하는 9명의 아프리카계 학생을 주방위군이 출입을 막았다. 문제의 시작은 유명한 ‘분리시키지만 평등한(separate but equal)’ 조항이다. 남북전쟁의 승리로 노예들이 해방되자 남부는 아프리카계를 차별하기 위해 인종분리법안을 제정했는데, 이에 대해 미연방대법원이 1896년 인종 분리는 분리시설이 ‘평등한’ 한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분리시키지만 평등한’ 조항은 이후 학교 등에서 인종 분리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됐다.


“공공교육에서 ‘분리시키지만 평등하다’는 조항은 말이 되지 않는다. 분리된 교육시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 1954년 연방대법원은 아프리카계 민권단체들의 탄원에 대해 이같이 판결했다. 대표적인 아프리카계 민권단체인 NAACP는 남부의 백인 전용 학교에 아프리카계를 입학시키기로 했다. 리틀록도 시교육위원회가 1957년 가을부터 점진적으로 이를 시행하기로 하고, 센트럴고등학교에 9명의 우수한 학생을 등록시켰다.


이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시위하겠다고 위협했다. 주지사는 “아프리카계의 등교는 폭동 등 평화의 파괴가 우려되기 때문에 평화유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주방위군을 출동시켜 이들의 등교를 막았다. 주방위군이 어린 학생들의 등교를 막고 학생들이 서럽게 우는 장면이 전국에 크게 보도되자, 나라가 시끄러워졌다.



역사적인 아칸소 센트럴고등학교는 이전하고 옛 교문만 역사유물로 보전돼 있다. 손호철 제공

역사적인 아칸소 센트럴고등학교는 이전하고 옛 교문만 역사유물로 보전돼 있다. 손호철 제공



리틀록 9총사, 흑백 통합 교육의 막 올려


리틀록 시장은 연방정부의 개입을 요구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807년 제정된 ‘반란법’(국내질서유지에 군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한 법)을 발동해 공수특전단을 리틀록에 급파하는 한편, 주방위군을 연방정부로 소속을 변경해 무력화시켰다. 9명의 학생은 공수부대의 보호를 받으며 등교했다. 역사적인 ‘흑백 통합교육’이 막을 올린 것이다.


센트럴고등학교 근처에는 관련 자료를 전시한 기념관이 있다. 센트럴고등학교는 길 건너편으로 이사했고, 옛 건물은 철거됐다. 다만 정문 등은 역사유적으로 지정·보존돼 있다. 그 앞에 서자 9명 소년·소녀의 용기에 존경심을 표하면서, 문득 몇 년 전 있었던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과의 대화가 생각났다.


“조 교육감, 강남의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 진학률이 강북의 15배인 것 알지요? 한마디로 교육이 ‘계급 평준화’가 아니라 ‘계급 영속화’의 수단이 되고 있어요. 따라서 서울시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여러개 잘라서 강남과 강북이 한 학군이 되는 ‘강남강북 통합학군’을 만들어 1950년대 말 미국 흑백 통합학교처럼 강북 학생이 강남 학교 가고 강남 학생이 강북 학교 가는 통합학군제를 실시해야 합니다.”


“그런 혁명적 변화는 강남 반발 때문에 어렵습니다.”


“미국은 70년 전에 공수부대까지 동원해서 했는데 왜 못해요? 그리고 인구가 많은 강북이 지지할 텐데.”


리틀록에는 ‘리틀록 9총사’보다 유명한 인물이 있다. 그는 아칸소의 ‘촌도시’를 전국적으로 알린 빌 클린턴이다.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에서 미국 대통령이 된 그의 흔적을 찾아 ‘빌 클린턴 대통령 박물관’을 찾았다.



리틀록 센트럴고등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학교 인종 분리 정책 폐지 투쟁 관련 사진. 손호철 제공

리틀록 센트럴고등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학교 인종 분리 정책 폐지 투쟁 관련 사진. 손호철 제공



“멍청하긴, 문제는 경제야!” 걸프전 승리로 낙승을 기대하던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무명의 클린턴을 당선시킨 유명한 선거 구호다. 전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생이 중요한 것이라는 이 구호는 민심을 정확하게 저격했고, ‘클린턴 신화’를 만들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그의 선거 캠페인 사진을 보자, 그 구호가 생각났다.


클린턴은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써 1980년 레이건 이후 지속해온 ‘공화당 지배체제’를 끝장내고 민주당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그의 승리는 달콤했지만, 독이 숨어 있었다. 독은 섹스 스캔들 등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신민주당 노선’이라는 그의 노선이다. 구체적으로, ‘경제적 보수주의’와 ‘사회적 진보주의’를 결합한, 흔히 ‘제3의 길’(루스벨트와 낡은 민주당도, 레이건과 공화당도 아닌)이라고 부르는 노선이었다.



리틀록이 낳은 세계적인 정치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기념관. 손호철 제공

리틀록이 낳은 세계적인 정치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기념관. 손호철 제공



클린턴은 ‘축복을 가장한 저주’


클린턴은 사회·문화 정책은 전통적인 민주당 노선을 계승해 반인종주의, 친여성, 친동성애 등 소수자 우호 정책 등을 추구했다. 하지만 경제노선은 뉴딜로 상징되는 그전까지의 민주당의 ‘진보적 노선’을 버리고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시장 만능주의에 굴복했다. 예를 들어 그는 민주당의 트레이드 마크인 복지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축소했다. 미국 최고 정치학자의 평을 빌리자면, “글로브 클리블랜드 이후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대통령”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는 바위로 계란을 깬 리틀록 9총사와 정반대로 ‘바위가 무서워 계란을 버렸다’. 승리를 위해 영혼을 판 파우스트가 된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기념관의 내부. 손호철 제공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기념관의 내부. 손호철 제공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무비판적인 ‘과잉 세계화’를 통해 현재의 트럼프주의를 만든 핵심 인물이다. 그는 1993년 집권하자마자 부시가 추진하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더욱 과감하게 밀어붙여 1994년 1월 1일부터 발동시켰다. 마약당국 등은 NAFTA를 실시할 경우 멕시코를 통해 마약이 마음대로 미국으로 들어와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보고서를 올렸으나 이를 발표할 경우 NAFTA 추진에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해 클린턴이 발표를 막았다고 한다. 그리고 보고서의 우려대로 멕시코는 미국을 위한 ‘마약왕국’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 그는 지구적 개방과 무한 경쟁 체제(‘지구화’)인 우루과이라운드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1995년 1월 1일 출범시켰다.



1980년 이후 지속된 공화당 지배 체제를 끝낸 클린턴의 1992년 대선 캠페인 자료들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기념관에 진열돼 있다. 손호철 제공

1980년 이후 지속된 공화당 지배 체제를 끝낸 클린턴의 1992년 대선 캠페인 자료들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기념관에 진열돼 있다. 손호철 제공



그는 기본적으로 국제경쟁력이 있는 미국의 첨단기술과 금융자본 위주의 정책을 편 것이다. 그의 세계화 정책은 자본에는 축복이었지만 경쟁력이 없는 철강, 자동차, 조선 등 ‘전통적인 제조업’에는 저주였다. 클린턴이 격발쇠를 당긴 ‘과잉 세계화’의 풍랑 속에 중국 등의 싼 물건이 밀려오면서 많은 제조업은 문을 닫아야 했고, 중북부의 산업 벨트는 ‘러스트 벨트’로 전락했다. 클린턴이 주도한 과잉 세계화는 그 반작용으로 세계화의 낙오자들을 중심으로 반세계화와 미국 제일주의를 골자로 하는 트럼프주의를 잉태시킨 것이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민주당과 미국의 ‘자유주의(리버럴) 세력’에게 축복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저주였다. 정확히 표현해 ‘축복을 가장한 저주’였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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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철도박물관 2030년 문 연다…당선작 '티 뮤지엄' 선정

새 철도박물관 2030년 문 연다…당선작 '티 뮤지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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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시·문화 3개 공간 구성…왕송호수 열차 풍경 조망

티 뮤지엄 조감도. 코레일 제공

티 뮤지엄 조감도. 코레일 제공


경기 의왕 철도박물관이 2030년 새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3일 철도박물관 시설개선사업 설계 공모 심사 결과 ㈜종합건축사사무소 근정의 '티 뮤지엄(T Museum)'을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티 뮤지엄은 과거와 현재·미래를 잇는 철도 역사 공간(Time)과 과거 철도차량 전시 공간(Train), 지역 주민과 관람객이 함께하는 문화 공간(Tomorrow) 등 3개 공간으로 꾸렸다. 부채꼴 형태의 부지를 살린 전시 공간 구성과 왕송호수 앞을 달리는 열차 풍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기획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공모에는 15개 업체가 참가해 사전기술심사와 작품심사를 거쳤다. 5개 입상작 가운데 티 뮤지엄이 최다 득표를 얻었다.


당선 업체에는 설계권이 부여되며 이달 설계계약을 체결한다. 나머지 4개 입상 업체에는 총 1억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입상작은 이달 코레일 대전 본사와 철도박물관, 서울역·오송역·부산역 등 전국 주요 역에서 순회 전시할 예정이다.


김태승 코레일 사장은 "대한민국 철도의 기술력과 발전사를 살펴보고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세계문화유산 ‘이란의 베르사유’가 위험하다

세계문화유산 ‘이란의 베르사유’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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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이스라엘 폭격으로 일부 파괴


페르시아 양식에 유럽 접목 ‘보물’

유네스코 “문화재 보호하라” 성명

이스라엘 유산 ‘백색도시’도 피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있는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의 ‘골레스탄 궁전’ 거울의 방 내부. 대형 샹들리에와 거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돼있다(왼쪽). 같은 방이 지난 2일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모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있는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의 ‘골레스탄 궁전’ 거울의 방 내부. 대형 샹들리에와 거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돼있다(왼쪽). 같은 방이 지난 2일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된 모습. 벽에서 떨어진 목재 장식과 거울·유리 파편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오른쪽). 골레스탄 궁전은 페르시아 전통 건축과 유럽 양식이 접목해 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유네스코· 타스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고 이란이 주변 국가를 상대로 보복에 나서면서 중동의 문화유산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점에 해당하는 중동은 이슬람·기독교 문화를 비롯해 고대 페르시아·히브리 문명 등의 자취가 남아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국제사회에서는 이슬람국가(IS)가 파괴한 이라크 고대 도시 하트라·님루드, 탈레반이 파괴한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석불의 사례처럼 이번 전쟁의 여파로 중동 지역의 문화유산이 소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6일 유네스코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의 골레스탄 궁전이 최근 미국·이스라엘의 공습 과정에서 일부 파괴됐다. 16세기 사파비 왕조 시기에 건설을 시작한 골레스탄 궁전은 페르시아 전통 양식과 유럽 양식이 접목한 독특한 모습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거울과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이 궁전은 1979년 혁명으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기 전 팔레비 왕조의 공식 연회 장소로 사용돼 ‘이란의 베르사유’로 불리기도 했다.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골레스탄 궁전 측이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사진·영상에는 천장을 장식하고 있던 거울이 산산조각나고, 유리 파편과 목재 장식의 잔해가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이 나온다. 궁전 측은 “문, 창문, 장식 몰딩을 포함한 목재 부분이 특히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밝혔다. 이란 국영 ISNA통신은 “궁전 인근의 법원·검찰청과 경찰서를 겨냥한 폭격과 이로 생긴 충격파로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에스마일 바카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소셜미디어에 “이란의 문화유산, 고대 역사와 문명의 요람을 말살하려는 흉악 범죄”라고 규탄했다.


페르시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이란엔 이 밖에도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였던 파사르가다에, 페르세폴리스 등을 비롯해 20여 곳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박물관 역시 800곳이 넘는다고 한다. 쿠르드족의 참전으로 지상전이 시작되고 전쟁이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면서 다른 문화유산도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이 보복 공격을 가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중동 각지에도 히브리·아랍 문명 등의 유산이 흩어져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백색 도시’가 이란의 공격을 받았다. 백색 도시는 20세기 초 유대인 건축가들이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의 영향을 받아 설계한 대규모 근대 건축 지구로, 4000여 채의 건물이 모여 있다.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타격한 지난달 28일 바우하우스 양식 건물 두 채가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일부 붕괴됐다고 한다.


이스라엘 국립극장인 하비마 극장의 외관 유리 장식도 같은 날 이란의 공격으로 파괴됐다. 예루살렘 미술관 측은 5일 페르시아 은 수공예 컬렉션 ‘하라리의 보물’ 등 소장품을 방공호로 옮겼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고고학 비정부기구 ‘에메크 샤베’의 국제관계 전문가 탈리야 에즈라히는 온라인 매체 아트뉴스페이퍼에 “전쟁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문화유산을 가리지 않는다”면서 “훼손된 문화유산은 인간의 정신 세계보다 파괴를 우선시한 실수를 보여주는 증거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전쟁이 중동 전반으로 확대되자 유네스코는 성명을 내고 “문화재는 국제법, 특히 무력 충돌 시에도 문화재를 상대로 적대 행위를 금지한 1954년 헤이그 협약에 따라 보호받는다”며 “역내 세계문화유산 등의 좌표를 관련 국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대규모 문화재 파괴를 계기로 체결된 헤이그 협약은 무력 충돌 시에도 박물관, 유적, 역사적 건축물 등에 대한 공격이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국제적 협약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시간 통합본] 도쿄가 대체 불가능한 도시인 진짜 이유

[1시간 통합본] 도쿄가 대체 불가능한 도시인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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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니다

2025년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4,270만 명으로 사상 처음 4천만 명을 돌파했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이 쓰고 간 돈이다. 역대 최고치 9.5조 엔, 원화로 약 89조 원. 도쿄는 이제 ‘구경하는 도시’가 아니라, 서브컬처·하이컬처·미식을 하나의 플라이휠로 엮어 도시 자체를 대체 불가능한 경험으로 만들어 내는 곳이 됐다.

그 플라이휠을 돌리는 엔진은 부동산 디벨로퍼들이다. 모리빌딩, 도큐, 미쓰이부동산, 미쓰비시지쇼 같은 기업들은 만화·애니·게임 IP를 단순한 마케팅 장식으로 보지 않는다. 도시의 가치 자체를 재정의하는 전략 자산으로 다룬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서브컬처를 ‘격상’한다. 둘째, 수직 배치로 경험을 다층화한다. 셋째, 일상과 연결해 접근성의 장벽을 부순다.


1. 서브컬처를 ‘예술’로 격상시키는 방식

모리빌딩의 전략은 “같은 콘텐츠라도 어디에 놓느냐가 가치를 바꾼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박물관 굿즈가 길거리 소품점에서 팔리면 상품이지만, 박물관 안에서 팔리면 작품의 연장으로 읽히는 것과 같다. 모리빌딩은 이 원리를 도시 개발에 그대로 이식했다.

만화를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으로 만든다

아자부다이 힐즈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슈에이샤 갤러리는 만화 원화를 디지털 방식으로 인증하고(진품성/희소성) 고급 인쇄 기법을 적용해 수집품으로 만든다. 여기에 팀랩의 디지털 아트를 배치해, 공간 전체를 “예술 콘텐츠 축”으로 굳힌다. 원피스·나루토·블리치 같은 IP는 예술과 대중문화 경계에 있는 글로벌 팬덤과 수집가를 불러들이는 강력한 흡입구가 된다.

아자부다이 힐즈 갤러리 역시 같은 방향이다. 일본 만화를 ‘산업’이 아니라 ‘현대 일본의 문화유산’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다카하타 이사오 회고전처럼 TV 애니메이션에서 지브리까지 50년 넘는 흐름을 정리하는 전시는, 애니메이션이 국가 브랜딩의 핵심이자 독자적 예술 장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포켓몬 공예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서브컬처를 하이엔드로 확장했다. 금속·흙·나무·섬유 등 다양한 소재로 포켓몬을 재해석한 작품을 전시하며, ‘캐릭터’가 ‘공예 작품’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비싼 공간”을 미술관에 준다

모리빌딩은 로폰기 힐즈 모리 타워 최상층에 미술관을 넣었다. 일반적으로는 펜트하우스나 최고가 오피스가 들어갈 자리다. 그런데 그 공간을 미술관에 할당했다. 이 자체가 “예술이 곧 빌딩의 경쟁력”이라는 선언이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그 상징적 사례다. 에도 시대 회화와 현대 애니메이션의 시각 문법을 연결해 ‘슈퍼플랫’을 정립했고, 대중문화와 고급미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모리미술관의 대규모 전시들은 오타쿠 문화가 ‘미술 담론’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실질적으로 보여준다.

도쿄 노드: 전시장이 아니라 ‘창조 인프라’

토라노몬 힐즈 스테이션 타워의 도쿄 노드는 예술을 도시 인프라로 확장한 실험 공간이다. 도쿄 노드랩은 크리에이터와 기업이 모여 새로운 도시 경험을 연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거점으로 설계됐다. 예술·기술·비즈니스가 결합되는 “창조 허브”로 기능한다.


2. 수직 배치로 ‘의도된 혼란’을 설계하는 방식

도쿄의 디벨로퍼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한 건물 안에서 층별로 충돌시키지 않고, 시너지로 이어지게 만든다.

토다 빌딩: 귀멸의 칼날 → 현대미술 → 베이커리

교바시의 토다 빌딩은 전통적인 비즈니스 거리였던 지역을, 수직 배치로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꿨다.

  • 6층: 크리에이티브 뮤지엄 도쿄(귀멸의 칼날 같은 대형 전시)

  • 3층: 일본 현대미술 핵심 갤러리들

  • 1층: 베이커리/카페 + 신진 작가 전시

서브컬처 전시로 들어온 사람이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을 보게 되고, 다시 일상 소비(카페)로 내려오면서 또 전시를 만난다. “가볍게 들어왔다가 교양이 생기는 동선”을 설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토다 빌딩은 단순 오피스가 아니라, ‘언제나 뭔가 기대하게 만드는 빌딩’이 된다.

시부야 파르코: 덕후를 명품 고객으로 전환시키는 구조

시부야 파르코 6층은 게임/애니 팬덤을 강하게 끌어모으는 공간이고, 그 유입이 아래층의 패션 소비로 이어지도록 설계된다. 실제로 면세 매출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일 정도로, 팬덤을 ‘패션 소비자’로 바꾸는 전환이 작동한다.


3. 일상과 연결해 ‘장벽을 없애는’ 방식

세 번째가 가장 강력하다. 서브컬처를 특별 이벤트로만 소비하게 두지 않고, 공기처럼 마시게 만들어 버린다.

애니메이션 도쿄 스테이션: 산업유산급 아카이브를 ‘무료’로

이케부쿠로의 애니메이션 도쿄 스테이션은 도쿄도가 설립하고 운영 단체가 관리한다. 지하에는 셀화·레이아웃 같은 중간 제작물 5만 점이 보관된다. “그냥 팬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콘텐츠를 산업유산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더 충격적인 건 접근성이다. 전시도, 아카이브 열람도 무료다. “돈은 됐고 일단 들어오라”는 태도다. 장벽을 없애면 팬덤은 커지고, 도시는 그 팬덤이 만드는 경제를 얻는다.

도쿄도청 프로젝션 매핑: 엄숙한 관공서를 세계 최대 야외 극장으로

도쿄도청 외벽은 밤이면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세계 최대 규모의 프로젝션 매핑 쇼가 무료로 열린다. 딱딱한 행정 공간이 관광객과 시민이 잔디밭에 누워 즐기는 ‘힙한 야외 극장’으로 바뀐다. 건축(단게 겐조의 상징성)이라는 하드웨어 위에 서브컬처라는 소프트웨어를 올려, 죽어 있던 야간 시간대를 되살린 것이다.

하라주쿠 하라카도: 쇼핑몰 지하에 ‘동네 목욕탕’을 넣는다

도쿄 코퍼레이션이 만든 하라카도는 ‘상품 판매’보다 ‘일상과 만남’을 공간의 원리로 삼는다. 땅값이 가장 비싼 상권에 목욕탕을 넣는 건 상식 밖이지만, 그 상식을 깨면서 “매일 들르게 만드는 장소성”을 만든다. 주민과 관광객이 섞이고, 이곳은 단발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된다.


브랜드도 서브컬처로 ‘되살린다’

에비스 맥주는 135년 된 전통 브랜드가 젊은 층에게 “아빠 술”로 굳어가는 위기를 겪었다. 여기서 선택한 방식이 조조의 기묘한 모험의 작가 아라키 히로히코와의 협업이다. 전통은 유지하되 표현 언어만 서브컬처로 바꿔 젊은 고객 유입을 폭발시켰고, SNS에서 인증샷 대란이 일어났다. 서브컬처를 ‘가벼운 재미’로 끌어오되, 결과적으로 브랜드의 품격을 높이는 구조다.


도쿄는 “경험의 밀도”를 팔고 있다

도쿄의 전략은 관광객 숫자보다 경험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서브컬처는 덕후 문화가 아니라, 도시 재생과 브랜딩을 돌리는 엔진으로 쓰인다.

  • 콘텐츠를 예술로 격상시켜 신뢰도와 희소성을 만든다

  • 층별로 문화를 섞어 시너지를 만드는 동선을 설계한다

  • 무료/일상 결합으로 장벽을 없애 팬덤을 확장한다

  • 결과적으로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문화 플랫폼으로 만든다

이런 방식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죽어가는 공간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브랜드를 어떻게 다시 젊게 만들 것인가”, “도시를 어떻게 경험으로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도쿄의 사례는 그대로 참고할 수 있는 실전 매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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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쿨하스: 도시를 재창조한 건축가

렘 쿨하스: 도시를 재창조한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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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을 설계하는 건축가, 렘 콜하스

건축이 조화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모순을 드러내는 일이라면 어떨까요. 도시는 완벽하고 질서정연한 시스템이 아니라 권력, 자본주의, 미디어, 욕망이 밀어붙이는 밀집된 혼돈의 기계라면 어떨까요. 렘 콜하스는 수십 년 동안 이 질문에 집착해 왔습니다. 그는 위로하는 건물을 만드는 대신 불편한 진실을 설계해 왔고, 그 태도는 현대 건축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전후 도시에서 시작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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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콜하스는 194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습니다. 로테르담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의 파괴되었던 도시이며, 그 폐허 위에서 진행된 전후 재건은 콜하스가 도시, 정체성, 근대성을 바라보는 방식에 깊게 스며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처음부터 건축가였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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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고, 네덜란드 영화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영화 작업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1960년대 후반, 런던의 AA 스쿨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급진적 실험과 정치적 도시 해석, 유토피아적 사고를 흡수하게 됩니다. 이 시기부터 콜하스의 건축은 형태보다 사고의 프레임, 즉 도시를 읽는 방식 자체를 겨냥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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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짓기 전에 이론으로 판을 바꾸다

콜하스가 건축가로서 대중적 명성을 얻기 전, 먼저 이론가로서 건축 담론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1978년에 출간된 『Delirious New York』입니다. 이 책은 맨해튼의 혼돈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혼돈을 찬양합니다.

콜하스는 뉴욕을 밀도의 문화로 읽어냅니다. 자본주의, 고밀도, 환상, 기술이 충돌하는 실험실로서의 도시입니다. 질서와 규범을 강요하는 대신, 이미 작동하고 있는 욕망과 시스템의 현실을 해부하고, 그것을 도시의 에너지로 받아들입니다. 이 책은 뉴욕을 근대 삶의 실험장으로 바꾸어 놓았고, 콜하스를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건축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OMA, 설계사무소가 아닌 연구 플랫폼

1975년 콜하스는 OMA를 공동 설립합니다. 전통적 의미의 설계사무소와 달리, OMA는 처음부터 연구와 비평, 글쓰기와 도시론을 결합한 플랫폼으로 작동했습니다.

OMA의 도면은 종종 정치적 다이어그램처럼 보이고, 마스터플랜은 사회 비평처럼 읽힙니다. 건축을 단순히 예쁜 형태나 기능적 해결로 좁히지 않고, 현대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또한 OMA는 세계 건축계의 강력한 훈련장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건축가들이 이곳을 거쳐갔고,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동시대 건축을 형성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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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환점, 쿤스트할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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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의 경쟁 설계와 비구현 프로젝트를 거친 뒤, OMA는 1992년 쿤스트할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 미술관은 전통적인 박물관의 동선을 거부합니다. 램프, 겹겹의 순환, 파편화된 공간들이 역동적이고 영화적인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콜하스는 삶이 이미 복잡한데 건축이 억지로 질서를 강요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듯, 복잡성을 공간의 언어로 번역합니다. 정돈된 전시실의 나열이 아니라, 움직임과 마주침이 중심이 되는 경험으로서의 미술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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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의 도약, 도시의 사용법을 바꾸는 공공건축

시애틀 중앙 도서관 2004

시애틀 중앙 도서관은 21세기 초 가장 급진적인 공공건축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이 건물은 전통적 층 구성을 버리고 지식의 연속적 나선 구조를 제안합니다.

유리와 철골의 외피는 도시를 반사하면서 내부의 질서와 복잡성을 동시에 암시합니다. 내부는 기능에 따라 분명한 플랫폼으로 구성되지만, 동선은 유동적이며 탐험을 유도합니다. 여러 레벨이 시각적으로 연결되고, 열린 아트리움과 투명한 구획이 경계를 흐립니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상자가 아니라 학습의 여정이자 사회적 장치, 시민의 랜드마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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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 다 무지카 2005

포르투의 카사 다 무지카는 음악을 공간 경험으로 번역한 프로젝트입니다. 결정체 같은 비대칭 볼륨이 도시 속에서 강하게 서 있고, 내부는 청중의 경험이 직선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설계됩니다.

플랫폼, 발코니, 복도는 어긋나고 비틀리며 관객을 움직이게 합니다. 리허설 공간이 유리로 드러나고, 순환 경로는 공연자와 관객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만듭니다. 콜하스가 말하는 프로그램의 유연성과 인간 움직임의 안무가 여기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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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미디어를 형태로 드러낸 CCTV 본사

베이징의 CCTV 본사는 콜하스의 문제의식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두 개의 타워가 서로 기울어 다가가며 연결되고, 75미터의 캔틸레버가 거대한 루프를 형성합니다.

구조적 힘은 외피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대각 브레이싱은 필요한 곳에서 촘촘해지고, 가벼워질 수 있는 곳에서는 열립니다. 기술적 성취를 넘어, 이 건물은 도시 자체의 은유처럼 작동합니다. 전통과 현대, 질서와 혼돈, 수직성과 수평성이 충돌하며 공존하는 베이징의 얼굴을 건물의 몸체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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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도시, 더 로테르담 2013

고향 로테르담의 워터프런트에 지어진 더 로테르담은 콜하스가 말하는 수직 도시입니다. 세 개의 타워가 하나의 기반 위에서 연결되고, 오피스, 주거, 호텔, 공공시설이 한 덩어리로 얽힙니다.

볼륨을 엇갈리게 쌓아 덩어리감을 줄이면서도, 브리지와 테라스 같은 공유 공간으로 타워 간 연결을 강화합니다. 이는 단지 고층 복합 건물이 아니라, 도시의 한 블록을 다시 작동시키는 장치로서의 건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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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를 충돌시키는 퐁다치오네 프라다 2015

밀라노의 퐁다치오네 프라다는 산업 유산인 증류소 건물을 복원하는 동시에, 새로운 기하학적 볼륨을 과감히 삽입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동시에 울리게 만듭니다.

방문자는 램프, 브리지, 계단으로 구성된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서로 다른 재료감과 प्रकाश, 공간의 리듬을 경험합니다. 거친 콘크리트와 반사 표면, 금박과 유리가 한 장면 안에서 충돌하면서도 새로운 서사를 형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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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커상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질문

콜하스는 2000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합니다. 이미 그의 영향력은 건물만이 아니라 책, 강연, 교육, 그리고 OMA라는 생산 시스템을 통해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프로젝트를 통해 관습을 흔들고, 글과 전시, 큐레이션을 통해 건축 담론을 밀어붙입니다. 콜하스의 건축은 편안함을 제공하기보다, 우리가 사는 도시와 사회가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이는지 보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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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은 설계된 장치다

렘 콜하스의 건물은 단순한 형태가 아닙니다. 도시와 사회, 문화 경험을 증폭시키는 장치입니다. 그는 프로그램과 맥락, 인간 행동을 분석하고 그것을 서사로 엮어 공간화합니다.

건축은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 콜하스가 남긴 가장 강력한 유산은 아마 이 문장에 가까울 것입니다. 우리는 도시의 표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작동하는 권력과 욕망의 메커니즘까지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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