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화조는 건축에서 가장 ‘사람다운’ 설비다》
건축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그려지는 건 외형이고,
가장 나중에 고민되는 건 ‘정화조’다.
사람들이 눈에 띄는 디자인에는 많은 이야기를 붙이지만,
정화조 같은 설비에는 말을 아낀다.
하지만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설계자의 책임을 본다.
정화조는 사람의 흔적을 감싸는 공간이다.
가장 사적인 활동을 처리하는 가장 기술적인 장치.
그건 수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생활의 바닥 설계다.
용량을 계산하고, 유입인원을 설정하고,
오수와 분뇨를 분리하거나 합류하며,
관로와 배기, 유지관리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건 단지 물리적인 설계가 아니다.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끝까지 책임지는 작업이다.
나는 자주 묻는다.
“이 건물의 정화조는,
그 안에서 살 사람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
그 질문은 곧
건축이 ‘겉’만 만드는 일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정화조는
건축의 가장 아래에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윤리를 담고 있다.
보이지 않아도, 항상 작동해야 하며
불편하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장치.
이것이야말로
건축이 삶을 설계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믿는다.
건축은 위를 짓는 일 같지만,
사람을 위한다면 아래부터 책임져야 한다.
정화조는 그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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