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올라오는 타임랩스 건축 영상들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친 공정을 단 몇 분으로 압축한다. 화면은 깔끔하고 빠르게 돌아가지만,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렇게 매끄럽지 않다. 10년간 단독주택 설계와 현장 감리를 병행하면서 확인한 것은, 고급 단독주택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공정이 전체 공사비와 기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타임랩스 영상에서 순식간에 올라가는 철근 배근 하나에도 구조계산서 검토, 배근 간격 확인, 피복 두께 체크가 선행된다. 이 글은 그 압축된 3분 뒤에 숨어 있는 실제 공정의 흐름을 단계별로 정리한 것이다.
기초부터 골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공정이 집의 수명을 결정한다
고급 단독주택에서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구간은 마감재가 아니라 기초와 골조다. 실제 프로젝트 기준으로 전체 공사비의 30~40%가 이 구간에 집중된다.
토목 및 기초 공사
지반 조사 결과에 따라 기초 방식이 달라진다. 연약 지반이라면 말뚝 기초가 필수이며, 이 경우 기초 공사비만 1억 원 이상 추가되는 경우도 있다.
방수층 처리는 기초 타설 직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항목이다. 나중에 누수가 생기면 마감재를 전부 걷어내야 한다.
동절기 콘크리트 타설은 양생 기간을 최소 28일 이상 확보해야 설계 강도를 만족한다.
골조 공사
철근콘크리트(RC) 구조는 층당 공사 기간이 약 3~4주 소요된다. 2층 규모라면 골조만 두 달 이상 잡아야 한다.
개구부 위치는 골조 단계에서 확정된다. 창문 크기와 위치 변경은 이 시점 이후 비용이 급격히 올라간다.
기초와 골조 단계에서 설계 도면과 현장 상태가 일치하는지 반드시 감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이 구간의 하자는 입주 후 발견해도 보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피 공사와 단열: 고급 단독주택의 핵심 성능은 여기서 갈린다
외벽 마감재가 화려해 보여도 단열 성능이 부족하면 냉난방비가 매달 수십만 원씩 추가된다. 패시브하우스 기준에 근접한 단독주택의 경우, 일반 주택 대비 냉난방 에너지를 70~80% 절감할 수 있다는 데이터가 있다.
단열재 선택 기준
외단열 시스템(EIFS)은 열교 차단에 유리하지만 시공 정밀도가 낮으면 결로가 발생한다.
경질우레탄폼은 단열 성능(열전도율 0.020~0.022 W/mK)이 높지만 화재 등급 확인이 필수다.
3중 유리 시스템 창호는 단가가 2중 유리 대비 40~60% 높지만, 북향 창이 많은 설계에서는 투자 대비 효과가 명확하다.
외벽 단열재 두께를 200mm에서 250mm로 늘리는 비용은 전체 공사비의 1~2% 수준이지만, 에너지 절감 효과는 연간 기준으로 10년 내 회수 가능하다.
내부 마감과 설비: 고급 주택의 완성도는 디테일에서 결정된다
타임랩스 영상에서 가장 빠르게 지나가는 구간이 내부 마감이지만, 실제 공사 기간에서는 가장 긴 비중을 차지한다. 150평 규모 고급 단독주택 기준으로 내부 마감과 설비 공사에만 4~6개월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설비 공사 순서
전기, 설비(배관), 통신, 스마트홈 배선은 반드시 마감재 시공 이전에 완료해야 한다.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공정이 겹쳐 하자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워진다.
바닥 난방 배관은 슬라브 위에 직접 시공하며, 이 단계에서 조닝(구역 분리) 설계가 완성되어야 한다.
마감재 선택 시 실무 원칙
고급 자재일수록 시공 숙련도가 품질을 좌우한다. 이탈리아산 대형 포세린 타일은 자재비보다 시공비가 더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목재 마감은 함수율 관리가 핵심이다. 현장 반입 후 최소 2주 이상 건조 기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시공 후 뒤틀림이 발생한다.
고급 단독주택 공사에서 준공 전 하자 점검은 반드시 건축주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 준공 이후 발견된 하자는 계약 조건에 따라 시공사 책임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실제 공기와 예산: 영상 3분과 현실의 간극
고급 단독주택의 현실적인 공사 기간은 설계 기간 포함 시 최소 18개월에서 24개월이다. 건축 허가만 지자체에 따라 2~6개월이 소요되기도 한다.
연면적 기준 고급 단독주택의 공사비는 평당 700만 원에서 1,500만 원 이상까지 분포한다. 이 수치는 마감 수준, 구조 방식, 지역별 노무비 차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설계비는 전체 공사비의 5~10% 수준이 적정하다. 설계비를 줄이면 시공 단계에서 변경이 잦아져 오히려 총비용이 증가한다.
예비비는 전체 예산의 10~15%를 반드시 확보해두어야 한다. 지반 상태, 기존 매설물, 법규 변경 등 예측 불가 변수가 항상 존재한다.
감리 계약은 별도로 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시공사에 감리를 맡기는 구조는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3분짜리 타임랩스가 주는 감동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영상 뒤에는 수백 번의 현장 회의, 도면 수정, 자재 검수, 그리고 건축주와의 끊임없는 소통이 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 전체 과정을 감당하는 일이다.
건물이 노후화되면 소유자나 조합원들은 반드시 하나의 중요한 선택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리모델링과 재건축 중 어느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결정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수십억 원의 비용 차이와 수년의 기간 차이, 그리고 복잡한 법적 절차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노후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면서 리모델링과 재건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두 사업 방식의 핵심 차이를 비용, 기간, 절차, 수익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완전히 비교 분석합니다.
리모델링과 재건축의 기본 개념 차이
리모델링은 기존 건물의 골조(뼈대)를 유지한 채 내부 구조를 개선하거나 면적을 증축하는 방식입니다. 주택법에 따르면 리모델링은 건축물의 노후화 억제 또는 기능 향상을 위해 대수선하거나 일부 증축하는 행위로 정의됩니다. 반면 재건축은 기존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리모델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수평증축 리모델링은 기존 세대 면적을 넓히는 방식이며,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기존 건물 위에 층을 더 올려 새로운 세대를 추가하는 방식입니다. 수직증축의 경우 기존 세대수의 15% 이내에서 가구 수를 늘릴 수 있어 사업성 확보에 유리하지만, 구조 안전성 검토 등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리모델링 적용 법률: 주택법, 건축법
재건축 적용 법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리모델링 특징: 골조 유지, 부분 증축, 빠른 사업 기간
재건축 특징: 전면 철거 후 신축, 용적률 극대화 가능, 사업 기간 장기
비용 비교: 리모델링 vs 재건축
비용은 두 사업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따져보아야 할 요소입니다. 일반적으로 리모델링 비용은 재건축 비용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단순 비교는 금물입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리모델링 비용
리모델링 공사비는 사업의 범위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전용면적 84㎡ 아파트 기준으로 세대당 평균 1억 2,000만 원~2억 원 수준이 일반적입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의 경우에는 구조 보강 공사가 추가되어 세대당 2억~3억 원까지 올라가는 사례도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수도권 주요 리모델링 단지의 평균 공사비는 3.3㎡당 약 450만~600만 원 선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리모델링의 비용적 장점은 철거 비용이 없고 기반 시설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만, 기존 골조 상태가 불량할 경우 예상치 못한 추가 보강 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 사전 구조 안전진단이 필수입니다.
재건축 비용
재건축은 철거부터 신축까지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진행하므로 비용 규모가 훨씬 큽니다. 일반적으로 서울 기준 재건축 공사비는 3.3㎡당 700만~1,000만 원 이상이며, 최근 자재비 및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일부 단지는 평당 1,200만 원을 넘기도 합니다. 전용 84㎡ 기준 세대당 분담금은 평균 3억~5억 원에 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건축의 경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도 비용 부담에 영향을 미칩니다. 1인당 평균 이익이 8,0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최대 50%까지 부담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단, 2023년 개정을 통해 면제 기준이 1억 1,000만 원으로 상향되었고, 1세대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감면 혜택도 확대되었습니다.
리모델링 평균 비용: 세대당 1억 2,000만~3억 원 (유형에 따라 상이)
재건축 평균 분담금: 세대당 3억~5억 원 (서울 기준)
재건축 추가 비용: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금, 이주비, 이사비 등
리모델링 절감 요소: 철거비 없음, 기반 시설 재활용
사업 기간 비교: 누가 더 빠를까?
사업 기간은 리모델링이 재건축 대비 압도적으로 짧습니다. 이 점이 많은 단지에서 리모델링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리모델링 사업 기간
리모델링 사업은 조합 설립부터 입주까지 평균 5~7년이 소요됩니다. 절차 자체가 재건축보다 단순하고, 안전진단이나 정비계획 수립 같은 복잡한 단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직증축 리모델링의 경우 구조 안전성 검토 단계가 추가되어 1~2년 정도 더 걸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2년에 입주한 경기도 성남 분당의 한 리모델링 단지는 조합 설립 후 약 6년 만에 완공된 사례가 있습니다.
재건축 사업 기간
재건축은 안전진단 신청부터 입주까지 평균 10~15년이 소요됩니다. 길게는 20년을 넘기는 사례도 있습니다. 정비계획 수립, 조합 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 단계가 많고 각 단계마다 행정 검토 기간이 길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합원 간 이해관계 충돌로 인한 분쟁이나 소송이 발생하면 사업이 수년간 지연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서울시의 경우 재건축 정비계획 수립에만 평균 3~4년이 소요되며, 이후 조합 설립인가와 사업시행인가 과정에서도 각각 1~2년이 추가됩니다. 이주 및 철거 기간과 공사 기간까지 합산하면 총 사업 기간이 상당히 길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법적 절차 비교: 무엇이 더 복잡한가?
절차의 복잡성은 재건축이 훨씬 높습니다. 아래에서 두 사업의 핵심 절차를 단계별로 비교합니다.
리모델링 주요 절차
리모델링은 크게 4단계로 구분됩니다. ① 리모델링 주택조합 설립(구분소유자 동의 요건: 전체의 2/3 이상, 각 동별 과반수 동의) → ② 건축심의 및 허가 신청 → ③ 공사 착공 → ④ 사용검사 및 입주 순서입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의 경우에는 건축심의 전에 구조 안전성 검토(전문기관 2곳 이상의 검토 의무화)가 추가됩니다. 또한 세대수 증가(가구 수 15% 이내 증가)를 수반하는 경우에는 지자체 허가가 필요합니다.
재건축 주요 절차
재건축은 훨씬 복잡한 8단계 이상의 절차를 거칩니다. ① 정비기본계획 반영 → ② 안전진단 신청 및 통과(D등급 이하 또는 E등급) → ③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 → ④ 추진위원회 구성 → ⑤ 조합 설립인가(구분소유자 3/4 이상 동의, 토지면적 3/4 이상 동의) → ⑥ 사업시행계획인가 → ⑦ 관리처분계획인가 → ⑧ 이주·철거 후 착공 → ⑨ 준공 및 입주의 순서를 따릅니다.
재건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안전진단입니다. 준공 후 30년이 경과한 공동주택은 안전진단을 신청할 수 있으며, 최종 등급이 D(조건부 재건축) 또는 E(즉시 재건축)가 나와야 재건축 절차가 진행됩니다. 2023년 이후 정부는 안전진단 기준을 일부 완화하여 재건축 추진이 보다 수월해졌습니다.
재건축 연한: 준공 후 최소 30년 이상 (지자체마다 다를 수 있음)
리모델링 연한: 준공 후 15년 이상 (주택법 기준)
재건축 조합 설립 동의요건: 구분소유자 3/4 이상
리모델링 조합 설립 동의요건: 구분소유자 2/3 이상
수직증축 리모델링: 조건과 핵심 체크포인트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기존 세대 위에 최대 3개 층을 추가로 올리는 방식으로, 증가한 세대를 일반 분양함으로써 조합원의 사업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수직증축이 가능하려면 기존 건물이 최소 15층 이상이거나 수직증축 후 최고 15층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제약이 있었으나, 2014년 법 개정으로 일부 완화되었습니다. 현재는 기존 세대수의 15% 이내에서 세대 수 증가가 가능하며, 2개 전문기관으로부터 구조 안전성 검토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의 핵심 조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준공 연한: 15년 이상 경과한 공동주택
층수 제한: 기존 최고층 수에 3개 층 이내 증축 가능
세대 수 증가: 기존 세대 수의 15% 이내
구조 안전성 검토: 국토안전관리원 등 2곳 이상 전문기관 검토 필수
동의 요건: 전체 구분소유자 2/3 이상, 각 동별 2/3 이상 동의
전용면적 증가 한도: 기존 전용면적의 40% 이내 (85㎡ 이하는 40%, 초과는 30%)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일반 분양 수익으로 조합원 분담금을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구조 보강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분당·목동·상계 등 1기 신도시 중심으로 사업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합니다. 실제로 분당 일부 단지들은 수직증축을 통한 리모델링 추진 시 조합원 분담금이 수평증축 대비 30~40% 절감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재건축 사업성 분석: 용적률과 일반 분양이 핵심
재건축의 사업성은 기본적으로 용적률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용적률이 낮고, 재건축 이후 허용 용적률이 높을수록 일반 분양 세대가 많아져 조합원의 분담금이 줄어들거나 오히려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용적률이 120%인 단지가 재건축 후 270%까지 용적률을 적용받는다면, 증가한 용적률(150%)만큼 새로운 세대를 지어 일반 분양할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권의 경우 일반 분양가가 3.3㎡당 6,000만~8,000만 원을 넘는 사례도 있어 이 경우 사업성이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
반면, 이미 용적률이 200% 이상인 고밀도 단지는 재건축 이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일반 분양 세대가 적기 때문에 사업성이 낮아집니다. 이런 단지들은 오히려 리모델링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재건축 사업성 분석 시에는 반드시 ① 현재 용적률, ② 해당 지역 정비계획상 허용 용적률, ③ 인근 분양가 시세, ④ 예상 공사비, 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금 규모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리모델링 vs 재건축,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결국 리모델링과 재건축 중 어떤 방법이 유리한가는 단지별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래의 기준을 참고하면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리모델링이 유리한 경우
준공 후 30년 미만으로 재건축 연한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현재 용적률이 이미 200% 이상으로 높아 재건축 사업성이 낮은 경우
구조물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여 골조 활용이 가능한 경우
사업 기간을 단축하여 빠른 주거 환경 개선이 필요한 경우
조합원 분담금 최소화가 우선인 경우
재건축이 유리한 경우
준공 후 30년 이상 경과하고 안전진단에서 D·E 등급을 받은 경우
현재 용적률이 낮아(100~150% 수준) 재건축 이후 대규모 일반 분양이 가능한 경우
건물 구조 자체가 노후화되어 리모델링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려운 경우
해당 지역 분양가가 높아 재건축 사업성이 충분한 경우
세대 수 증가 폭을 크게 가져가 사업 규모를 극대화하려는 경우
최근에는 두 방식의 장점을 결합한 '리모델링+알파' 전략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단지는 리모델링을 먼저 진행하여 주거 환경을 개선한 후, 추후 재건축 연한 충족 시 재건축으로 전환하는 2단계 전략을 검토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 경우 이중으로 비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리모델링과 재건축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고친다는 공통점 외에, 비용·기간·절차·사업성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사업입니다.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없으며, 해당 단지의 준공 연한, 용적률, 구조 상태, 지역 분양 시장 상황, 조합원들의 재정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에 반드시 전문 정비사업 컨설턴트, 건축사, 법무사 등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충분한 사전 검토를 거치는 것을 권장합니다. 제대로 된 사전 준비와 정확한 정보가 수억 원의 비용과 수년의 시간을 아껴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작년 말 경기도 용인에서 단독주택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건축주가 첫 미팅에서 꺼낸 말이 아직도 귀에 남는다. "설계사 말고 에너지 컨설턴트도 따로 구해야 하나요? 패시브하우스에 스마트홈까지 한꺼번에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트렌드 1 — 패시브하우스 설계 기준의 제도화
2020년대 들어 단열 기준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국토교통부 고시 제2023-771호) 별표1 기준, 중부1지역 외벽 열관류율은 0.150 W/m²K 이하로 묶여 있다. 2015년 기준(0.270 W/m²K)과 비교하면 불과 8년 만에 허용치가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 셈이다. 독일 패시브하우스 인증 기준(연간 난방에너지 15 kWh/m² 이하)에 근접하려는 현장 수요도 늘었다.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함정이 있다. 고단열 외피를 완성해 놓고도 열교(thermal bridge) 차단 처리를 빠뜨리는 경우다. 창호 주변 인방보 구간에서 열교가 발생하면 에너지 성능이 계획 대비 20~30% 이상 떨어질 수 있다. 에너지 시뮬레이션 단계에서 열교 부위를 PSI 값으로 별도 산정하는 절차를 설계 초기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트렌드 2 — 모듈러 건축의 현실적 가능성과 한계
공장 제작 후 현장 조립하는 모듈러 공법은 공기를 기존 현장 시공 대비 30~40% 단축할 수 있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소규모 건축물 발주자의 관심이 높아졌다. 건축법 시행령 제46조(방화구획 설치)와 제61조(건축물의 마감 재료)는 모듈러 유닛 접합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문제는 유닛 간 접합 줄눈 처리다. 현장에서 두 개 이상의 유닛을 적층할 때 구조 접합부가 방화구획 경계와 겹치면 내화 충전재 시공 여부를 감리자가 명시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실제로 수도권 한 물류 지원 시설 현장에서 접합부 내화 충전이 누락된 채 사용승인 신청이 들어온 사례가 있었다. 사용승인 반려 후 재시공 비용이 공사비의 5%를 초과했다.
트렌드 3 — 리모델링 수요 급증과 용적률 완화 제도 활용
통계청 건축물 현황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준공 후 30년 이상 경과한 건축물 비율이 전체의 36%를 넘어섰다. 신축 대비 공사비 절감 효과와 맞물려 리모델링 문의가 매년 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건축법 제8조의2(기존 건축물의 특례)와 주택법 제2조 제25호(리모델링 정의)가 핵심 근거 조문이다. 주거용 건축물의 경우 세대수를 기존의 15% 이내에서 증가시킬 수 있고, 전용면적은 세대당 최대 40 m²까지 늘릴 수 있다. 실무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류는 기존 건축물 대장 면적과 실측 면적의 불일치다. 1980~90년대 건물은 대장상 면적이 실제보다 작게 기재된 경우가 많아, 증축 가능 범위 산정 전에 반드시 실측 도면과 대장을 대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트렌드 4 — 스마트홈 설비의 건축 인허가 연동
홈 오토메이션과 IoT 설비는 더 이상 인테리어 영역이 아니다. 전기사업법 시행규칙 별표2 및 지능형 건축물 인증제도(국토교통부 고시 제2023-106호)는 스마트홈 설비의 설계 반영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지능형 건축물 인증 1등급을 받으면 건축기준 완화 항목 중 용적률을 최대 12% 완화받을 수 있다. 그러나 EV 충전기 콘센트 전용 회로, 태양광 연계 ESS 용량, 홈 네트워크 분전반 위치는 건축 허가 도서에 명기하지 않으면 완공 후 설치 시 전기공사 추가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설계 초기에 기계·전기 협력사와 BIM 기반으로 설비 공간을 확보해 두는 것이 시간과 비용 모두를 아끼는 방법이다.
실무 경험상 네 가지 트렌드는 독립적으로 적용될 때보다 두 가지 이상이 결합될 때 인허가 복잡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패시브하우스 기준을 맞추면서 모듈러 공법을 적용하려면 공장 제작 단계부터 에너지 성능 시험 성적서를 확보해야 하고, 리모델링에 스마트홈을 통합하려면 기존 전기 배선 용량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
해당 지역 열관류율 기준(국토교통부 고시 제2023-771호 별표1)을 확인하고, 외벽·지붕·창호 사양을 계획 단계에서 기재한다.
모듈러 공법 적용 시 유닛 접합부 방화구획 처리 방법을 감리 계획서에 별도 항목으로 추가한다.
리모델링 착수 전 건축물 대장 면적과 실측 면적을 대조하여 증축 가능 범위를 문서로 확정한다.
스마트홈 설비 목록(EV 충전, ESS, 홈 네트워크 등)을 건축 허가 도서에 반영하여 추가 허가 리스크를 제거한다.
두 가지 이상의 트렌드를 결합하는 경우, 설계 착수 시점에 건축·기계·전기 협력사가 참여하는 통합 킥오프 회의를 반드시 개최한다.
부산 해운대 대우마리나 3차가 이달 13일 벡스코에서 재건축 창립총회를 열고 조합 설립을 본격화합니다.
부산 해운대 대우마리나 3차가 이달 13일 벡스코에서 재건축 창립총회를 열고 조합 설립을 본격화합니다. 바로 옆 경남마리나도 추진위 동의서를 수집하며 속도를 내고 있어, 마리나 타운 전체 4개 아파트 2538세대가 재건축 흐름에 들어서는 모양새입니다. 삼성물산·GS건설·롯데건설 등 1군 건설사가 시공권에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전문가는 사업 속도가 곧 비용이라며 인기 지역의 양극화를 예고했습니다.
[내용]
해운대 마리나 타운 아파트를 갖고 있거나 관심 있게 보고 있다면, 지금이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시점입니다. 대우마리나 3차 재건축 창립총회가 이달 13일로 잡혔고, 경남마리나도 추진위 동의서 수집에 속도를 내면서 마리나 시리즈 전체가 재건축 궤도에 오르는 분위기입니다.
대우마리나 3차, 창립총회에서 뭘 결정하나
대우마리나3차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오는 13일 오후 2시 부산 벡스코에서 재건축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합니다. 이날 총회에서는 조합장·감사·이사·대의원을 선출하고 조합 정관을 확정합니다. 정비계획 변경 및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도시계획업체도 선정하며,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와 설계자도 이날 결정됩니다. 설계권을 두고는 3파전이 예고된 상태입니다.
대우마리나 3차는 해운대구 우동 977번지 일원, 10개동 750세대를 4개동 995세대(지하 4층~지상 38층)로 재건축하는 사업입니다. 1994년 준공 이후 32년이 지났고, 올해 1월 해운대구청으로부터 추진위원회 구성 승인을 받은 상태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사업 일정입니다. 원래는 조합 설립 인가 후 정비계획변경 결정과 정비구역변경 지정을 별도로 받아야 했고, 이 과정이 보통 6개월에서 1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해운대구청이 조합설립인가와 정비계획변경인가를 동시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하면서 사업 기간을 최소 3개월 단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업 기간 단축은 금융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조합원 분담금 감소에도 직접 영향을 줍니다.
위 사진이 이번 재건축의 출발점, 대우마리나 3차 아파트 전경입니다. 32년 된 이 단지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설계권 3파전 결과가 총회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경남마리나는 지금 어느 단계인가
바로 옆 경남마리나 아파트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재 재건축정비사업추진위원회 설립을 위한 동의서를 받고 있으며, 매주 금요일과 일요일 재건축 설명회를 진행 중입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동의서가 많이 걷히고 있고, 최근 새로 아파트를 구입해 진입하는 세대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경남마리나 움직임에 기름을 붓고 있는 건 인근 요트경기장 재개발입니다. 요트경기장 기존 건물 철거가 이미 시작됐고, 이 호재가 주민들 사이에서 재건축 공감대를 빠르게 형성하고 있다는 게 현장 분위기입니다. 요트경기장 재개발과 마리나 시리즈 재건축이 맞물리면서 이 일대 전체의 가치가 함께 올라가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마리나 타운 전체 그림, 얼마나 커지나
가장 먼저 재건축에 시동을 건 대우마리나 1·2차는 주민 70% 이상 동의를 받은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상가 소유주 위주의 신탁 방식 추진위원회가 각각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사업비만 1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삼성물산, GS건설, 롯데건설 등 1군 건설사 대부분이 마리나 시리즈 재건축 시공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 사업의 규모를 가늠하게 합니다.
대우마리나 1·2·3차에 경남마리나까지 합치면 현재 마리나 타운 거주 세대는 2538세대입니다. 4개 아파트 재건축이 완료되면 4000세대 안팎의 초대형 단지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 일대는 지하철 역세권이면서 바다 조망을 갖춘 평지 학군지로, 마린시티·해운대해수욕장과 인접한 부산 최고 인기 주거 지역으로 꼽힙니다.
분담금이 부담스럽다면, 전문가가 말하는 판단 기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 일대를 두고 "해운대 전체, 부산 전체를 놓고 봐도 최대 우량주이며 서울로 따지면 압구정동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현재 조합원 분담금이 커 보일 수 있지만, 사업성과 가격 상승 추이를 고려하면 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해수동 일대 다른 재건축 사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다만 전문가는 금융 비용과 공사비 상승으로 '사업 속도 = 비용'이 된 지금, 인기 지역일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비인기 지역은 더 느려지는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즉, 같은 재건축이라도 어느 단지냐에 따라 비용과 일정이 크게 갈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마리나 타운 재건축, 지금 파악해야 할 것
대우마리나 3차: 6월 13일 벡스코 창립총회 → 조합장·설계자 선정 / 대우마리나 1·2차: 추진위·신탁 방식 병행, 사업비 1조 원대 / 경남마리나: 추진위 설립 동의서 수집 중, 요트경기장 재개발 시너지 진행 중 / 4개 단지 합산 재건축 완료 시 4000세대 초대형 단지 예정.
하라주쿠와 오모테산도는 단순한 쇼핑 거리라기보다 도쿄의 주류와 비주류 문화가 계속 부딪히는 건축 현장에 가깝다. 위드하라주쿠처럼 주변 숲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도 있고, 자일 오모테산도처럼 상업 건축의 문법에 반항하는 건물도 있다. 이 글은 네 개의 공간을 따라 걸으며 하라주쿠 특유의 양면성을 읽어본다.
하라주쿠 오모테산도 건축 여행은 막상 걸어보면 쇼핑보다 공간의 충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샤넬 같은 하이패션 매장이 있고, 몇 걸음 옆에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와 골목 문화가 붙어 있다. 고즈넉한 신사와 가장 빠르게 변하는 유행의 거리가 한 동네 안에 섞여 있다는 점도 이 지역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곳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유명 건축물이 많아서가 아니다. 하라주쿠는 주류와 비주류, 고급 브랜드와 스트릿 문화, 전통적 풍경과 상업적 에너지가 좁은 거리 안에서 계속 부딪힌다. 그 충돌이 그대로 건축의 표정으로 드러나는 동네라는 점에서 도쿄 건축 답사 코스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위드하라주쿠에서 보이는 메이지진구 숲과 현대 상가의 거리감
하라주쿠역 앞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 중 하나가 위드하라주쿠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시기에 맞춰 새로 올라간 이 주상복합 건물은 처음 보면 목조건물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철골 구조 위에 목재 마감이 덧입혀진 방식이다.
중앙 입구에는 신사의 도리이를 떠올리게 하는 큰 문이 세워져 있다. 이 장치는 옆에 있는 메이지진구와의 연결성을 의식한 것으로 읽힌다. 노출 콘크리트와 나무를 사용해 지나치게 번쩍이는 현대 상업시설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흔적을 품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각 층마다 보이는 나무 기둥은 숲의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다. 하라주쿠역 앞 대로의 복잡함 속에서도 메이지진구를 둘러싼 숲의 이미지를 살짝 끌어온 느낌이다. 정면의 유리벽은 계단식으로 나뉘어 하나의 큰 건물인데도 여러 블록의 작은 상가가 모인 것처럼 보인다.
대로변 카페에서 숲을 바라보는 맛도 있지만, 이 일대는 사람과 차량의 흐름이 워낙 많다. 그래서 조용히 쉬고 싶다면 정문 쪽보다 뒤편의 계단식 쉼터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 하라주쿠역 바로 앞이라는 입지는 좋지만, 휴식까지 기대한다면 소음과 동선의 차이를 생각해야 한다.
코쿠요 공간은 문구점이 아니라 생활감 있는 오피스 실험실에 가깝다
위드하라주쿠를 따라 걷다 보면 다케시타도리처럼 사람이 몰리는 상권을 지나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주택들이 섞인 골목이 나오고, 건물마다 벽돌과 타일, 형태가 전부 다른 일본 주거지 특유의 풍경이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눈금이 그어진 듯한 독특한 외관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카페 겸 문구점으로, 일본의 유명 문구 기업 코쿠요 그룹이 직접 설계와 기획, 운영까지 맡은 공간이다. 노트와 학용품으로 익숙한 브랜드가 건축 공간을 만들었다고 하면 조금 의외지만, 사실 코쿠요는 오피스 디자인과 사무용 가구 영역까지 다루는 그룹이다.
1층은 카페와 문구점, 2층과 3층은 가구 제작 공방과 제품 선행개발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외관도 완전히 열려 있거나 완전히 닫힌 느낌이 아니다. 안에서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위기는 남기되, 거리와도 적당히 연결되어 있다.
매장 안에는 아기자기한 문구류와 독특한 소품이 많다. 특히 바느질된 실을 풀어가며 사용하는 달력처럼, 작은 아이디어가 생활 물건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다. 직원 복장이나 카페 메뉴에서도 학창 시절의 급식소 같은 친근한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하라주쿠를 찾는 10대와 20대는 물론 다양한 연령대가 부담 없이 들어오게 만드는 장치처럼 보인다.
하라주쿠 골목에서 공간을 보는 법 — 하라주쿠는 큰길만 보면 브랜드 쇼핑 거리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옆으로 빠지면 문구점, 주택가, 스트릿 브랜드, 카페가 뒤섞인다. 건축을 보러 간다면 유명 건물 하나만 찍고 이동하기보다 큰길과 뒷골목을 번갈아 걷는 편이 훨씬 입체적이다.
자일 오모테산도는 럭셔리 거리의 질서에 일부러 엇나간다
하라주쿠의 양면성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단어가 우라오모테다. 겉과 속, 앞과 뒤라는 의미처럼 하라주쿠에는 오모테산도의 화려한 표정과 우라하라주쿠의 골목 문화가 나란히 존재한다. 이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느껴지는 지점 중 하나가 자일 오모테산도다.
자일 오모테산도는 캣스트리트와 오모테산도가 만나는 교차점에 자리한 상업 건축물이다. 네덜란드 건축 그룹 MVRDV의 작품으로, 주변 상업 건축이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는 거대한 포장지처럼 변해버린 상황에 대한 반응처럼 읽힌다.
이 건물은 바로 옆의 디올 오모테산도와 비교하면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디올이 정교하고 투명한 케이스 같은 인상을 준다면, 자일은 검은 블록들이 비틀리듯 쌓인 모습이다. 매끈하고 통제된 럭셔리 부티크와 달리, 자일은 여러 방향에서 들어갈 수 있는 동선을 만든다.
일반적인 명품 매장은 파사드에 하나의 출입구를 두고, 내부 동선 역시 브랜드가 정한 흐름을 따르게 만든다. 반면 자일은 중앙 출입구 외에도 지하 계단, 외부 계단, 각 층으로 이어지는 여러 문을 둔다. 현재 사용되는 외부 진입 문만 해도 12개에 이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든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반항적인 건물이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샤넬을 비롯해 메종 마르지엘라, 꼼데가르송, 로마 디자인 스토어, HAY 등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아우르는 브랜드들이 모여 있다. 겉보기에는 불친절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안쪽은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궁금증을 만든다.
4층 카페 테라스에서는 옆 건물인 디올 오모테산도 로고가 보이는 인증샷 스팟도 있다. 서로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가진 두 건물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장면은 꽤 묘하다. 경쟁하는 듯하면서도 서로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관계처럼 느껴진다.
래그태그 오모테산도에서 보이는 투명함과 폐쇄감의 미묘한 균형
자일을 나와 왼편으로 돌면 우라하라주쿠에서 이어지는 캣스트리트를 계속 걸을 수 있다. 이 길은 시부야까지 이어지고, 오모테산도의 하이패션 거리와는 다른 캐주얼한 공기가 흐른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하라주쿠 골목의 분위기에 더 가깝다.
그 안에서도 래그태그 오모테산도는 건축적으로 꽤 흥미로운 공간이다. 현재는 빈티지 아이템과 중고 의류를 주로 취급하는 매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예전에는 고급 가구와 인테리어 잡화를 판매하던 공간이었다. 설계는 일본의 유명 건축가 세지마 카즈오가 맡았다.
외벽 전체가 유리로 구성된 점은 세지마 카즈오의 다른 작업들과도 연결된다. 유리와 금속처럼 매끄러운 소재를 사용해 개방적이고 투명한 인상을 만들지만, 이곳은 단순히 속이 다 보이는 건물이 아니다. 얇은 줄무늬가 들어간 유리벽을 이중으로 세우고, 그 줄무늬가 겹치며 물결 같은 무늬를 만든다.
이 효과 때문에 낮에는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고, 밖에서는 내부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개방되어 있지만 동시에 닫혀 있는 느낌이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투명한 유리로,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은 두꺼운 벽으로 처리되어 있어 이런 대비가 더 또렷하다.
다만 현재는 일부 계단에 불투명 시트지가 붙어 있어 원래의 완전한 투명감을 그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선택처럼 보인다. 건축적 의도가 멋져도 실제 운영에서는 사용자의 시선과 편안함이 결국 조정점이 된다.
매장 곳곳에 놓인 명작 가구들은 이 공간의 과거를 살짝 떠올리게 만든다. 중고 의류 매장이 된 지금도 단순한 쇼핑 공간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옆에 있는 삼각형 형태의 건물 역시 안도 타다오의 작업으로 알려져 있어, 이 일대는 걷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봐야 더 재미있다.
하라주쿠 오모테산도 건축 여행이 기억에 남는 이유
하라주쿠와 오모테산도는 하나의 분위기로 설명하기 어렵다. 한 블록 차이로 럭셔리 부티크와 스트릿 골목이 바뀌고, 고요한 신사와 번잡한 쇼핑 동선이 겹친다. 그래서 이곳의 건축은 조화를 택하기도 하고, 정면으로 반항하기도 한다.
위드하라주쿠와 코쿠요 공간은 주변의 환경과 생활감을 받아들이는 쪽에 가깝다. 반대로 자일 오모테산도와 래그태그 오모테산도는 상업 거리의 익숙한 문법을 조금씩 비틀며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 이 둘이 섞여 있기 때문에 하라주쿠만의 공기가 만들어진다.
도쿄에서 현대건축을 보고 싶다면 오모테산도의 유명 플래그십 스토어만 따라가도 충분히 볼거리가 많다. 하지만 하라주쿠 건축 여행의 진짜 재미는 큰길과 뒷골목을 함께 걸을 때 살아난다. 화려한 브랜드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반항, 그리고 그 반항마저 쇼핑과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되는 장면이 이 동네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이케부쿠로 현대건축 여행 코스를 생각하면 처음엔 선샤인시티나 번화가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이 동네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1920년대 건축부터 쿠마 켄고의 수직 정원까지, 생각보다 깊은 시간의 층을 품고 있다. 시부야나 신주쿠처럼 화려한 도심이라는 얼굴 뒤에, 오래된 이미지와 도시 재생의 흔적이 동시에 남아 있는 곳이다.
이케부쿠로는 지금은 도쿄 3대 부도심 중 하나로 익숙하지만, 과거에는 화재로 일부 지역이 사라졌고 형무소, 공사판, 유흥가, 고속도로 아래의 어두운 분위기까지 겹치며 거친 이미지가 강했던 동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곳의 건축을 보는 일은 단순히 예쁜 건물을 찾는 여행이 아니라, 도시가 자신의 인상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따라가는 산책에 가깝다.
자유학원 명일관에서 만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조용한 수평선
이케부쿠로역 남쪽 출구에서 메트로폴리탄 호텔 뒤편으로 걸어가면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진다. 번화가의 속도가 조금씩 사라지고, 오래된 보도블록과 낮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끝에 자리한 곳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자유학원 명일관이다.
자유학원 명일관은 일본에서 여성을 위한 교육 이념과 맞물려 만들어진 근대 건축물로, 단순한 학교 건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당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20세기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로 거론되던 건축가였고, 이 작은 학교는 그의 유기적인 건축 감각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장소다.
이곳의 매력은 거대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낮게 깔린 수평 입면과 기하학적 패턴이 만드는 차분한 밀도에 있다. 학생 수가 많지 않았던 시절의 학교라 규모는 작지만, 창살과 조명, 의자, 목재 디테일이 공간을 빈틈없이 채운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작다’는 느낌보다 ‘손으로 만든 공간’이라는 감각이 먼저 온다.
특히 운동장 쪽으로 열린 큰 창과 수직 창살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지만, 비용을 고려해 통유리에 창살 패턴을 더한 부분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빛이 들어오는 방식과 조명의 각도가 절묘해서, 공간 전체가 조용히 장식되는 느낌을 준다. 르 코르뷔지에의 차갑고 기계적인 근대건축과는 다른, 조금 더 따뜻한 결의 근대성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강당까지 보면 자유학원 명일관의 미묘한 차이가 보인다
자유학원 명일관은 길을 사이에 두고 본관과 강당으로 나뉜다. 강당은 늘어나는 학생 수를 수용하기 위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제자 엔도 아라타가 설계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인 인상은 스승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지만, 입구와 정원의 분위기에서는 다른 결이 느껴진다.
본관이 자연을 건물 안으로 부드럽게 끌어들이는 느낌이라면, 강당 쪽은 자연물이 조금 더 분리되어 있는 인상이다. 그래서 두 건물을 함께 보면 같은 계보 안에서도 건축가의 손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게 된다. 여행 중 건축을 보는 재미는 이런 미묘한 차이에서 커진다.
입장할 때 300엔을 추가하면 중앙 카페에서 차와 과자를 곁들일 수도 있다. 건축 답사라고 해서 무겁게만 볼 필요는 없다. 오래된 교정의 나무와 낮은 건물,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며 잠깐 앉아 있는 시간이 오히려 이 장소를 가장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자유학원 명일관을 볼 때 놓치기 아까운 부분
건물의 크기보다 창살 패턴, 조명 각도, 의자와 목재 디테일을 천천히 보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의 분위기가 훨씬 선명하게 다가온다.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 리뉴얼이 동네 이미지를 바꾼 방식
이케부쿠로 동쪽 출구로 넘어오면 선샤인시티 주변의 고가도로와 빌딩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활기 있는 상업지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는 공사판과 어두운 공원, 유흥가 이미지가 겹치며 도시의 인상이 꽤 거칠었다고 한다. 그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줬던 장소 중 하나가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이다.
지금의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은 밝고 정돈된 잔디광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전에는 어둡고 무섭고 지저분한 공원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역과 가까운 좋은 입지였기 때문에, 이 공간이 바뀌면 이케부쿠로의 이미지도 빠르게 달라질 수 있었다.
7년에 걸친 리뉴얼 이후 이 공원은 지나치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는 장소로 바뀌었다. 잔디밭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앉고 쉬게 만드는 장치가 됐고, 그 변화만으로도 동네의 표정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물론 흡연 민원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도시 재생이 꼭 거대한 건물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쿠마 켄고 도스마 구청 정원은 무료 전망대처럼 즐기는 곳
선샤인시티 방향으로 걷다 보면 도스마 구청과 아파트가 결합된 도스마 에코뮤제 타운이 보인다. 이 건물은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설계를 맡았던 쿠마 켄고 사무소의 작업으로, 외부에서부터 재활용 목재와 식물, 태양광 패널이 겹쳐진 듯한 독특한 표정을 보여준다.
이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10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경사진 수직 정원이다. 중앙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가면 관광객에게 많이 알려진 전망대와는 다른 조용한 풍경이 펼쳐진다. 도쿄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면서도 사람이 많지 않아, 날씨 좋은 날에는 유료 전망대보다 더 여유롭게 느껴질 수 있다.
다만 이 정원은 오후 4시까지만 개방되기 때문에 시간을 놓치면 가장 좋은 장면을 보기 어렵다. 이케부쿠로 건축 여행 코스에 넣는다면 자유학원 명일관을 먼저 보고, 점심 이후 동쪽으로 넘어와 늦지 않게 도스마 구청 정원을 보는 흐름이 편하다.
밖에서 보이던 패널은 가까이서 보면 더 흥미롭다. 재활용 목재, 태양광 패널, 실제 식물들이 섞여 있고 층마다 배열과 높이가 조금씩 달라서 걷는 동안 시선이 단조로워지지 않는다. 쿠마 켄고 건축에서 자주 보이는 수직 루버와 목재 감각은 내부에서도 이어진다. 엘리베이터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도 수직 루버가 분위기를 정리해줘 조잡하기보다 질서 있게 느껴진다.
이케부쿠로 건축 여행은 번화가의 다른 얼굴을 보는 일이다
이케부쿠로는 낮보다 저녁부터 더 활기를 띠는 동네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유흥가와 상업시설, 캐릭터 숍, 선샤인시티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자유학원 명일관 같은 근대 건축,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 같은 도시 재생의 흔적, 쿠마 켄고의 공공건축이 숨어 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오츠카의 라멘집 나키루를 점심 동선에 넣어도 좋다. 8년 연속 라멘으로 미슐랭 원스타를 유지한 곳으로 언급될 만큼 유명하고, 탄탄면의 깔끔함이 인상적인 곳이다. 다만 웨이팅이 길어 선뜻 가볍게 들르기는 어렵다. 이른 점심을 잡을 수 있을 때만 현실적인 코스가 된다.
이케부쿠로 현대건축 여행 코스의 재미는 “이 동네가 이런 곳이었나”라는 감각에 있다. 100년 전 교육 이념을 담은 작은 학교에서 시작해, 어두운 이미지를 벗으려는 공원, 그리고 살아 있는 나무 같은 건물을 꿈꾼 공공청사까지 이어진다. 화려한 관광지보다 조금 느린 도쿄 여행을 좋아한다면, 이케부쿠로는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는 동네다.
도쿄국립박물관은 한 번에 완성된 박물관이 아니라 1909년부터 1999년까지 시대마다 다른 건축 언어가 차곡차곡 더해진 공간이다.
도쿄국립박물관은 한 번에 완성된 박물관이 아니라 1909년부터 1999년까지 시대마다 다른 건축 언어가 차곡차곡 더해진 공간이다. 효케이관, 본관, 동양관, 호류지보물관은 각각 서구화, 정체성 회복, 동양미의 해석, 보존과 공개라는 고민을 건축으로 남겼다.
[내용]
도쿄국립박물관 건축 특징을 처음 마주하면 단순히 “오래된 박물관이구나” 하고 지나치기 어렵다. 우에노 공원 북쪽의 한 부지 안에 1909년부터 1999년까지 서로 다른 시대의 건물이 차례로 놓여 있고, 그 사이에는 단순한 증축이 아니라 앞선 건물과 다음 건물이 서로 대화하는 듯한 긴장이 흐른다.
서울의 많은 건축이 새로 짓고, 고치고, 빠르게 바꾸는 방식으로 도시의 속도를 보여준다면, 도쿄국립박물관은 조금 다르다. 이곳은 기존 건물을 쉽게 지우지 않고, 그 옆에 다음 시대의 답을 조심스럽게 얹어왔다. 그래서 도쿄국립박물관은 건물 하나를 보는 장소라기보다, 90년에 걸친 공간 기획의 판단을 읽는 장소에 가깝다.
도쿄국립박물관이 특별한 이유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처음부터 완벽한 마스터플랜으로 다섯 개 건물을 한꺼번에 세운 공간이 아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건물이 하나씩 더해졌고, 그때마다 기획자들은 같은 질문 앞에 섰다. 이미 무언가가 들어선 땅 위에 다음 건물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건축이 단순히 외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선 시대의 건물이 만든 분위기, 축선, 시야, 재료감, 상징성을 모두 읽은 뒤 그다음 건물이 들어서야 했다. 무심코 새 건물을 놓으면 부지는 흐트러지고, 지나치게 옛 건물에만 맞추면 자기 시대의 목소리를 잃는다.
왼쪽에는 1909년의 효케이관, 정면에는 1938년의 본관, 오른쪽에는 1968년의 동양관이 자리한다. 여기에 1999년의 호류지보물관과 헤이세이관까지 더해지면서 이 부지는 박물관이면서 동시에 시대별 건축 언어가 쌓인 거대한 기록물이 되었다.
효케이관은 메이지 시대가 유럽을 향해 보낸 선언처럼 보인다
도쿄국립박물관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본관이 아니라 효케이관이다. 1909년, 훗날 다이쇼 천황이 되는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해 세워진 이 건물은 일본이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어 했던 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품고 있다.
네오바로크풍 외관, 대칭적인 구성, 입구의 사자 조각, 세월을 먹고 푸르게 변한 돔은 당시 일본이 유럽식 건축을 얼마나 강하게 의식했는지 보여준다. 막상 앞에 서면 장식이 많은데도 가볍지 않고, 오히려 국가적 메시지를 정면으로 밀어붙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은 이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당시 박물관의 상징이던 벽돌조 건물이 무너지면서, 서양식 건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효케이관은 살아남았지만, 그 이후 들어설 건물들은 더 이상 단순한 서구 모방으로 갈 수 없었다.
본관은 무너진 서양식 건축 위에 일본식 정체성을 덧씌운 건물이다
1938년에 완성된 도쿄국립박물관 본관은 관동대지진 이후의 답처럼 등장한다. 설계 공모를 거쳐 지어진 이 건물에는 단순한 박물관 재건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무너진 서양식 벽돌 건축 대신, 일본은 무엇을 자기 건축의 얼굴로 삼을 것인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서양식 콘크리트 구조 위에 일본식 지붕을 얹은 재관양식이다. 양복을 입고 갓을 쓴 사람처럼 어딘가 어색하지만, 바로 그 어색함이 당시 일본 사회의 정체성 고민을 드러낸다. 이 건물을 단순히 전통적인 일본풍 박물관으로만 보면, 그 안에 담긴 시대적 불안과 정치적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본관 내부의 대리석 계단과 웰홀은 지금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중앙 홀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이어지는 아치, 돌바닥에 울리는 발소리, 넓게 펼쳐지는 계단이 몸을 먼저 압도한다. 이 공간이 여러 광고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인 이유도 이해된다.
전시 동선 역시 일본 미술의 흐름을 몸으로 따라가게 만든다. 1층과 2층을 이동하며 조각, 도자, 칠기, 일본미의 연대기를 지나가다 보면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기억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양관은 콘크리트로 번역한 실크로드의 창고 같다
1968년에 들어선 동양관은 본관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고도성장기의 일본이 자신을 아시아의 중심으로 인식하던 시기, 동양관은 그 자신감을 건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설계자는 다니구치 요시로. 전통과 모더니즘을 한 건물 안에 어떻게 공존시킬 것인가를 오래 고민한 인물이다.
동양관의 외관은 얼핏 콘크리트 건물인데, 자세히 보면 목조 건축의 기억이 배어 있다. 깊게 돌출된 처마, 기둥 상단의 형태, 격자 루버, 은근한 박공 지붕의 기울기까지 모두 전통 건축의 감각을 현대 재료로 옮긴 장치처럼 보인다.
내부는 더 흥미롭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이어지는 구조 사이에 중간층을 끼워 넣은 스키플로어 방식이라, 관람 동선이 단순히 위아래로 나뉘지 않는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천장 높이와 빛의 온도가 달라지고, 공간은 마치 동굴처럼 깊어졌다가 다시 열리는 리듬을 만든다.
이 동선은 중국, 한반도, 동남아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이집트로 이어지는 동양 미술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든다. 전시를 보며 걷다 보면 동양관이 단순한 전시실이 아니라 실크로드를 압축한 건축적 여행처럼 느껴진다.
호류지보물관은 건축이 스스로 조용해지는 방식으로 유물을 살린다
1999년에 완성된 호류지보물관은 도쿄국립박물관 안에서도 가장 조용한 긴장을 가진 건물이다. 이곳은 나라 호류지가 황실에 헌납한 300여 점의 유물을 보관하고 공개하기 위한 공간이다. 7~8세기 아스카·나라 시대의 금동불과 목조 조각처럼 예민하고 오래된 보물이 중심이다.
설계자는 다니구치 요시오다. 동양관을 설계한 다니구치 요시로의 아들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전통과 모더니즘을 나란히 세우는 방식으로 답을 냈다면, 아들은 호류지보물관에서 건축이 최대한 조용해지는 길을 택했다. 유물이 말하게 하고, 건물은 뒤로 물러나는 방식이다.
입구 앞의 얕고 넓은 수반, 대각선으로 놓인 석제 통로, 정면으로 곧장 밀고 들어가지 않게 만드는 동선은 모두 의도된 장치다. 직선으로 들어가고 싶은 몸을 살짝 비틀게 만들고, 그 사이에 물과 빛, 건물의 반사가 시야에 들어온다.
내부는 유리와 알루미늄의 현대적 외피 안에 라임스톤 전시 박스를 넣은 이중 구조다. 온도, 습도, 자외선을 통제하면서도 관람객에게 유물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전 공간이 일주일에 한 번만 열릴 정도로 보존에 민감했다면, 새 보물관은 보존과 공개라는 충돌하는 조건을 건축적으로 풀어낸 셈이다.
도쿄국립박물관을 다르게 보는 방법
건물을 예쁘다, 웅장하다 정도로만 보지 말고 “왜 이 위치에, 왜 이 시기에, 왜 이런 형태로 들어왔을까”를 따라가면 공간이 훨씬 입체적으로 읽힌다.
헤이세이관까지 더해지며 도쿄국립박물관은 시대의 층을 완성한다
본관 뒤편의 헤이세이관은 1999년에 완공됐다. 나루히토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해 기획된 건물이라는 점에서, 1909년 다이쇼 천황의 결혼을 기념해 세워진 효케이관과 묘하게 이어진다. 90년의 간격을 두고 황실의 두 세대가 한 부지 안에 건축으로 남은 셈이다.
이런 구성이 흥미로운 이유는 도쿄국립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보관하는 공간을 넘어, 일본이 각 시대마다 어떤 상징을 건축으로 남기려 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효케이관은 서구를 향한 열망, 본관은 재난 이후의 정체성, 동양관은 아시아를 향한 시선, 호류지보물관은 보존과 공개의 균형을 말한다.
막상 이 흐름을 알고 경내를 걸으면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건물 하나하나가 따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선 건물이 던진 질문에 다음 건물이 조용히 답하는 구조처럼 느껴진다.
도쿄 건축 여행에서 이곳을 먼저 봐야 하는 이유
도쿄국립박물관은 유명한 전시품 때문에만 갈 곳이 아니다. 도쿄 건축 여행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곳은 도시를 읽는 출발점에 가깝다. 새것만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과 협상하며 다음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울과 도쿄의 차이를 단순히 스카이라인이나 규모로만 비교하면 놓치는 것이 많다. 중요한 것은 오래된 것을 남기는 방식, 새 건물이 들어올 때 기존 질서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감각을 남기는지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진짜 매력은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을 통해 시대의 판단이 보인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곳을 보고 나면 도쿄의 다른 건물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걸 누가 왜 이렇게 지었을까”라는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효케이관의 녹색 돔, 본관의 웰홀 계단, 동양관의 콘크리트 기둥, 호류지보물관의 비틀어진 진입로는 모두 각 시대의 기획자가 남긴 답이다. 그리고 그 답들이 한 부지 안에 나란히 서 있기 때문에 도쿄국립박물관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와 건축을 이해하는 꽤 좋은 교과서처럼 남는다.
카구라자카 건축 여행은 도쿄를 조금 다르게 보고 싶은 사람에게 잘 맞는 코스입니다. 시부야나 신주쿠처럼 큰 간판과 인파가 먼저 떠오르는 도쿄와 달리, 카구라자카는 언덕과 골목, 오래된 가게와 프랑스풍 디저트숍, 신사와 현대건축이 묘하게 섞여 있는 동네입니다.
카구라자카 건축 여행, 도쿄의 작은 교토와 작은 파리를 걷는 현대건축 코스
카구라자카 건축 여행은 도쿄를 조금 다르게 보고 싶은 사람에게 잘 맞는 코스입니다.
이곳이 흥미로운 이유는 별명부터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카구라자카는 도쿄 안의 작은 교토라고도 불리고, 동시에 작은 파리라고도 불립니다. 일본적인 골목 정서와 프랑스 문화의 흔적이 한 동네 안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카구라자카는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찍는 동네라기보다,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도시의 층위를 읽는 여행지에 가깝습니다.
카구라자카가 작은 파리로 불리게 된 이유
카구라자카가 작은 파리라는 별명을 얻게 된 배경에는 도쿄일불학원이 있습니다. 이곳은 프랑스어 교육과 문화 교류를 위해 1952년에 세워진 장소로, 이후 주변에 프랑스 이주민과 관련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며 리틀 파리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프랑스 시설이 있어서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카구라자카 자체가 언덕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고, 이 지형이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을 떠올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리의 분위기와 문화적 배경이 함께 작용해 지금의 이미지가 만들어졌습니다.
도쿄일불학원은 구관과 신관의 대비도 볼 만합니다. 구관은 일본의 1세대 건축가 사카쿠라 준조가 맡았고, 신관은 현대적으로 개방감 있는 공간을 잘 다루는 소우 후지모토가 설계했습니다. 한 캠퍼스 안에서 시간 차이가 나는 두 건축 언어를 함께 볼 수 있는 셈입니다.
도쿄일불학원에서 보이는 오래된 교육 공간과 새로운 만남의 공간
구관은 70년 전 건축답게 비교적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중앙의 나선형 계단은 학생용과 교직원용 동선을 나누기 위한 장치로, 당시의 교육관과 공간 인식이 반영된 부분처럼 보입니다.
반면 신관은 훨씬 열려 있습니다. 유리로 된 강의실과 계단식으로 배열된 층, 여러 방향으로 흩어진 작은 계단들은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고 대화하도록 유도합니다. 어학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 간의 대면과 교류이기 때문에, 건축이 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방식입니다.
이곳의 매력은 원생이 아니어도 일부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자료실과 캠퍼스 분위기를 함께 보면, 카구라자카가 왜 작은 파리라고 불리는지 조금 더 쉽게 이해됩니다.
카구라자카를 걷기 전에 보면 좋은 장면
도쿄일불학원은 카구라자카의 프랑스적 이미지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구관과 신관을 함께 보면, 오래된 교육 공간이 현대적인 열린 캠퍼스로 바뀌는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 디저트숍과 일본 오래된 브랜드가 함께 있는 거리
카구라자카의 골목은 언덕과 함께 기억됩니다. 경사가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프랑스풍 간판과 오래된 일본 가게가 번갈아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동네는 한 방향으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방금 전까지 파리 같은 분위기였는데, 몇 걸음 뒤에는 교토의 골목처럼 느껴집니다.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가 프랑스 디저트 체인 오 메르베이유 드 프레드입니다. 머랭을 기반으로 한 디저트와 대형 샹들리에가 파리의 분위기를 내지만, 카구라자카 지점은 거리의 톤에 맞춰 조금 더 차분하게 조정된 느낌을 줍니다.
한편 이 동네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 브랜드의 오프라인 매장도 자리합니다. 유명 상권인 긴자나 시부야가 아니라 카구라자카에 이런 브랜드와 가게들이 모여 있다는 점만 봐도, 이 동네가 가진 이미지와 결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카기 신사는 전통 신사를 현대적으로 바꾼 사례입니다
카구라자카 메인 스트리트를 걷다 보면 아카기 신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오랜 역사를 가진 신사이면서도, 현대적인 인상이 강한 장소입니다. 바로 옆의 고급 주택과 함께 쿠마 켄고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쿠마 켄고는 목재를 자주 사용하는 건축가로 유명하지만, 이 신사에서는 나무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신사의 핵심 요소는 유지하면서도 콘크리트와 유리벽을 함께 사용해 훨씬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만듭니다.
특히 조경도 인상적입니다. 나무가 일정하게 줄지어 심긴 것이 아니라 제각각 놓인 듯 보이는데, 기존 나무의 자리를 가능한 살리며 건축을 배치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신사와 맨션이 장기적으로 재건축을 전제로 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보존과 갱신을 함께 고려한 프로젝트로 볼 수 있습니다.
아카기 신사는 전통을 그대로 복제한 공간이 아니라, 오늘의 도시 속에서 신사가 어떻게 다시 읽힐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라카구는 창고를 거의 건드리지 않고 살린 리노베이션입니다
카구라자카에는 쿠마 켄고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라카구도 있습니다. 오래된 책 창고를 개조해 만든 공간으로, 건물 자체를 크게 바꾸기보다 도로와 입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손을 본 사례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쌀과 식품을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일본 전역의 쌀을 취급하고, 원하는 만큼 도정해 조합해주는 서비스도 있으며, 식재료 패키지 역시 일반 마트와는 다른 감각을 보여줍니다.
이 공간이 재미있는 이유는 건물의 낡은 외관과 내부 콘텐츠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만약 완전히 새 건물로 바뀌었다면 대형 마트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기존 창고의 분위기가 남아 있어 오히려 식문화와 보존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카구라자카의 매력은 새롭고 화려한 건물만 찾으면 놓치기 쉽습니다. 오래된 구조를 어떻게 남겼는지 함께 봐야 이 동네의 분위기가 보입니다.
가파른 언덕 끝에서 만나는 세키구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카구라자카에서 조금 더 조용한 거리로 이동하면 와세다와 맞닿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일대에는 고급 일식집과 오래된 호텔, 종교 시설이 곳곳에 있고, 언덕의 경사도 꽤 강하게 다가옵니다.
그 길 끝에서 만날 수 있는 건축물이 세키구치 성모 마리아 대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도쿄 도청을 설계한 단게 겐조의 작품이며, 일본의 첫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그의 건축 세계를 체감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외관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감싸져 있어 상당히 미래적인 인상을 줍니다. 얼핏 최근 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964년에 지어진 건축물입니다. 60년 전의 건축이 여전히 현대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 조형의 힘이 느껴집니다.
성당 내부에서 느껴지는 단게 겐조의 압도적인 스케일
세키구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외관만 독특한 건물이 아닙니다. 전체 형태는 전통적인 대성당처럼 십자가 구조를 따르고, 옆에는 높은 종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현대적인 재료와 조형을 사용하면서도 종교 건축의 정통성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면 기울어진 콘크리트 벽면이 십자가 형태의 공간감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장식이 많지 않아도 스케일 자체가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빛과 구조, 콘크리트의 질감이 합쳐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외감이 생기는 공간입니다.
이 성당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세운 프랑스학당과도 연결되는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구라자카 일대가 프랑스 문화와 여러 층위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카구라자카는 밤이 되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카구라자카는 낮에 건축과 골목을 따라 걷기에도 좋지만, 해가 진 뒤에는 분위기가 또 달라집니다. 가로등이 켜지고 이자카야와 비스트로가 문을 열기 시작하면, 낮의 차분한 골목이 조금 더 은근하고 깊은 거리로 바뀝니다.
도쿄 여행에서 유명한 대형 명소에 익숙해졌다면, 카구라자카는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랜드마크 하나만 보고 끝나는 여행보다, 언덕을 오르고 골목을 돌며 건축과 가게, 오래된 도시의 분위기를 함께 보는 방식이 더 잘 어울립니다.
작은 교토와 작은 파리라는 별명은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닙니다. 카구라자카는 일본적인 거리의 결, 프랑스 문화의 흔적, 현대건축의 개입이 한 동네 안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도쿄를 여러 번 방문한 사람에게도 충분히 새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 유후인은 화려한 온천 숙소를 기대하고 가면 오히려 조용하게 당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눈에 띄는 장식이나 과한 연출보다, 나무와 흙, 빛과 그림자, 그리고 유후인의 산세가 천천히 앞으로 나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 유후인, 쿠마 켄고가 보여준 자연에 지는 건축의 감각
코미코 아트 하우스 유후인은 화려한 온천 숙소를 기대하고 가면 오히려 조용하게 당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을 이해하려면 쿠마 켄고가 말해온 ‘지는 건축’이라는 표현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여기서 진다는 말은 건축이 실패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연을 압도하지 않고, 풍경보다 앞서지 않으며, 사람이 머무는 시간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드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 유후인은 건축이 스스로를 크게 드러내기보다 유후인의 자연과 마을을 먼저 보이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자연에 지는 건축이라는 말이 머무는 방식
처음 “지는 건축”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건축은 보통 더 높고, 더 크고, 더 독창적인 것을 향해 평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쿠마 켄고가 말하는 방향은 조금 다릅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건축이 자연을 이기려 드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과 지역의 맥락 안으로 스며드는 방식입니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 흙집이나 동굴 같은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기술과 생활을 받아들이되, 그 표면을 지나치게 차갑거나 단절된 방식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 유후인은 바로 이 지점을 잘 보여줍니다. 전통을 그대로 복원하지도 않고, 최신식 리조트처럼 매끈하게 감싸지도 않습니다. 대신 로우테크의 질감과 현대적 설비가 동시에 존재하는 묘한 중간 지점에 서 있습니다.
그을린 나무 외벽이 먼저 말을 건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 유후인의 외벽을 보면 가장 먼저 검게 그을린 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는 목재 표면을 태워 탄소막을 형성하는 전통 공법인 약스기를 활용한 것입니다. 화학적 코팅을 덧씌우는 대신, 나무 자체의 표면을 변화시켜 보호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약스기는 단순히 전통 공법을 반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무 간격이 조금씩 달라지고, 그 위에 수직 각재가 덧대어지면서 외벽에 깊은 음영이 생깁니다. 빛이 움직일 때마다 표면은 납작하지 않고, 조용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이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오래된 공법을 가져왔지만 결과물은 전통 건축의 복제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현대적인 입면처럼 보이면서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재료의 온도를 잃지 않습니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의 외벽은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조율한 목재의 표정에 가깝습니다.
전통 료칸의 장식을 덜어낸 자리
일본식 숙소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다다미방, 도코노마, 꽃, 족자, 정원 풍경 같은 장면이 생각납니다. 전통적인 일본 공간은 자연을 그대로 들여오기보다, 자연을 잘라내고 다듬어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주는 방식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코미코 아트 하우스의 실내는 조금 다릅니다. 전통적인 장식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화병이 놓인 도코노마도, 산수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식도, 과하게 꾸민 프레임도 없습니다.
대신 나무를 깎아 만든 문지방, 흙과 짚, 종이를 바른 벽과 천장처럼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재료들이 공간을 이룹니다. 그런데 그 만듦새는 투박하기보다 아주 얇고 반듯합니다. 전통적 재료를 사용했지만 결과는 모던하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이 공간을 전통 료칸의 장식적 이미지로만 기대하면 오히려 비어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비어 있을수록 바깥 풍경이 더 또렷해진다
실내의 장식이 줄어들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향합니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에서 중요한 것은 방 안에 무엇이 많이 놓여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냈기 때문에 무엇이 보이는가입니다.
유후인의 풍경, 특히 유후다케가 만들어내는 산의 존재감은 장식보다 강하게 다가옵니다. 창밖의 계절감, 빛의 방향, 주변 건물과의 거리감이 공간의 분위기를 천천히 만듭니다.
건축이 한 발 물러나면 풍경이 더 가까워집니다. 이곳에서 말하는 럭셔리는 금박이나 대리석, 화려한 서비스가 아니라 조용히 앉아 빛과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이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코미코 아트 하우스 유후인은 장식을 더해 고급스러워지는 방식이 아니라, 장식을 덜어내 유후인의 풍경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머무는 사람은 건축물을 감상한다기보다, 건축이 비워낸 자리에서 자연을 다시 보게 됩니다.
마을의 속도와 건축의 태도가 닮아 있다
유후인은 처음부터 거대한 자본이 만든 대형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온천 관광지이기 전에 작은 마을이었고, 주민 주도의 마을 만들기 흐름 속에서 천천히 성장해온 곳으로 설명됩니다. 크기를 키우기보다 결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쿠마 켄고의 건축은 이곳에서 더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건축이 앞에 나서기보다 물러나듯, 유후인이라는 마을도 과도하게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자기 속도를 지켜온 곳이기 때문입니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는 주요 관광지와 완전히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한 걸음 비켜난 위치에 있습니다. 언제든 유후인의 중심으로 걸어갈 수 있으면서도 숙소 안에서는 조용히 휴식에 집중할 수 있는 거리감입니다. 관광과 쉼 사이의 균형이 잘 잡힌 위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케동과 츠치동, 재료의 이름을 가진 객실
코미코 아트 하우스에는 2인실인 타케동과 4인실인 츠치동이 언급됩니다. 각각 대나무와 흙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이름부터 이미 이곳이 어떤 재료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츠치동은 흙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처럼 차분하고 낮은 감각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칠거나 원시적인 공간은 아닙니다. 흙과 종이, 나무처럼 오래된 재료가 현대식 설비와 만나면서 매우 정돈된 분위기를 만듭니다.
자연적인 소재가 기술과 멀어지게 만드는 대신, 오히려 현대식 편의와 조용히 겹쳐집니다. 겉으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프라이버시, 빛의 조절, 시선의 차단, 설비의 숨김 같은 세밀한 설계가 숨어 있습니다.
현대식 료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료칸은 오래된 형식을 가진 숙박 공간입니다. 다다미, 온천, 식사, 접객, 정원처럼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지만 코미코 아트 하우스는 그 이미지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현대식 료칸이 된다는 것은 편의시설을 최신식으로 바꾸는 정도가 아닙니다. 자연을 장식으로 실내에 넣는 방식에서 벗어나, 건축 자체가 주변 풍경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는 일에 가깝습니다.
장식적 자연을 덜어내고, 진짜 계절과 빛, 산의 존재를 직접 마주하게 하는 것. 이 방식이야말로 코미코 아트 하우스가 보여주는 현대적 료칸의 감각입니다.
현대의 료칸은 전통 장식을 많이 갖추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사람이 자연과 시간을 더 선명하게 느끼도록 돕는 공간일 수 있습니다.
로우테크가 오히려 가장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AI와 디지털 기술이 일상을 빠르게 바꾸는 시대에 우리는 점점 더 비물질적인 경험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화면 안에서 보고, 누르고, 스크롤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재료의 온도는 오히려 더 특별해집니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최신 기술로 감싼 화려한 공간이 아니라, 나무와 흙, 종이 같은 재료를 아주 섬세하게 다루면서 현대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로우테크는 낡은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에는 가장 고급스러운 감각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처럼 재료의 시간과 빛의 움직임을 느끼게 하는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유후인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숙소
코미코 아트 하우스 유후인은 유후인다운 속도를 가진 숙소입니다. 조용하고, 절제되어 있고, 주변을 먼저 보게 합니다. 큰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유후인의 산과 마을, 빛과 공기를 더 잘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경험은 건축가의 이름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 안에 앉아 빛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창밖의 산을 바라보다가 건축이 무엇을 덜어냈는지 천천히 알아차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유후인 여행에서 온천과 거리 산책만 생각했다면, 코미코 아트 하우스는 조금 다른 결의 목적지가 될 수 있습니다. 숙소로 머무는 것도 좋고, 미술관과 카페를 통해 가볍게 경험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코미코 아트 하우스 유후인은 건축이 한 발 물러났을 때, 오히려 공간의 기억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국토일보 하종숙 기자]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간삼건축)가 국내 설계 파트너로 참여한 ‘퐁피두센터 한화(Centre Pompidou Hanwha)’가 오는 6월 4일 개관한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한화문화재단과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파트너십으로 추진, 기존 63빌딩 별관을 리모델링해 조성된 복합 문화 공간이다.
건축 디자인은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Jean-Michel Wilmotte)가, 국내 설계 파트너로는 간삼건축이 참여했다. 간삼건축은 기본·실시설계를 수행하며 빌모트의 디자인을 국내 건축·구조·법규 기준에 맞게 구현했다.
빌모트는 ‘빛의 상자(box of light)’를 컨셉으로 낮에는 자연광이 깊숙이 스며들고, 밤에는 한강변을 비추는 빛의 수평선이 도시 풍경 속에 드러나도록 계획했다. 외관은 63빌딩의 수직성과 대비되는 수평적 빛의 띠와 전통 기와의 곡선을 연상시키는 반투명 이중유리 외피가 특징이다.
이번 리모델링은 재실 상태의 본관을 유지한 채 별관과 지하층 구조를 단계적으로 해체·보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복잡한 프로젝트였다. 63빌딩 본관 리뉴얼과 별관 증축, 아쿠아리움과 면세점 설계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63빌딩 리모델링 전반을 설계해 온 간삼건축의 경험이 프로젝트 완수의 토대가 됐다.
설계를 총괄한 이승한 간삼건축 건축가는 “퐁피두센터 한화는 황금빛 63빌딩 아래 수평의 빛의 상자를 더해 여의도에 새로운 문화 기단을 놓는 프로젝트였다”며 “국내 설계 파트너로서 빌모트의 설계 의도와 한국의 환경, 기술, 법규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고 63빌딩에 대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현실의 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쿤스트할(Kunsthal)은 로테르담의 공원과 제방 사이 레벨차가 있는 대지 위에 지어졌는데, 콜하스는 이 레벨차를 없애는 대신 오히려 건물을 관통하는 경사로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관람객은 하나의 연속된 경사 동선을 따라 여러 전시실을 자연스럽게 오가게 되며, 이는 위계 없이 프로그램들이 서로 겹치고 교차하는 OMA 특유의 설계 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프로그램의 중첩이 만든 실험적 공간
쿤스트할은 미술관이면서도 고정된 전시 순서나 정면성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 미술관 건축의 관습을 벗어난 시도로 평가받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전시 공간과 강당, 통로가 하나의 연속된 동선 안에 뒤섞여 배치되면서, 건물 자체가 고정된 용도보다는 유연하게 변주 가능한 틀로 기능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입니다.
자하 하디드의 건물은 복잡하고 놀랍고 완전히 독보적입니다. 하지만 더 혁명적인 것은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녀의 혁신은 형태가 특이해서가 아니라, 회화적 추상에서 드로잉의 환영으로, 그리고 공간 경험의 시간성으로 이어지는 논리를 건축에 통합한 데 있습니다.
그녀는 '그리는 방식'이 '만들어지는 공간'까지 바꾸도록 설계를 재구성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론이었습니다.
말레비치의 테크토닉 — 추상을 설계 방법으로
자하 하디드의 전환점은 AA(런던) 4학년 논문에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Suprematism)를 건축으로 옮긴 작업 "말레비치의 테크토닉"이었습니다. 말레비치가 현실 재현을 버리고 단순한 기하와 제한된 색으로 순수한 감정을 밀어붙였듯, 자하는 전통적 건축 드로잉의 한계를 넘어 추상을 '표현 수단'이 아니라 '설계 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2D와 3D, 실루엣과 입체,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섞어 움직임을 만들고, 말레비치의 형상이 '아키텍톤(3D 오브제)'이 되고, 그 아키텍톤이 다시 실제 건물로 번역되는 연쇄를 보여줍니다.
홍콩 더 피크와 캘리그래피 스케치 — 맥락적 생성
이 흐름은 홍콩 더 피크(미실현)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자하는 콜라주처럼 도시·산·프로젝트를 한 장면에 겹쳐 그 건물이 "산에서 자라난다"는 맥락적 생성을 드로잉으로 증명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그녀 특유의 캘리그래피(서예적) 스케치입니다.
반쯤 평면이고 반쯤 회화인 선들은 곧 공간의 동선·흐름·응집을 예고하며, 시간이 지나 건물로 진화합니다. 이때부터 말레비치의 '떠 있는 형상'은 엘 리시츠키(El Lissitzky)·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언어와 접속합니다.
구성주의에서 빌려온 개념
구성주의는 예술을 감정의 표출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기능적 설계로 연결하려 했습니다.
리시츠키는 다중 소실점, 중첩된 평면, 역동적 시점으로 '보이지 않는 차원'을 암시했고,
이것이 자하에게 결정적으로 꽂힌 개념이 바로 4차원 = 시간이었습니다.
MAXXI — 4차원(시간)을 공간으로 구현하다
자하가 시간(4차원)을 건축으로 구현하는 방식은 "건물을 한 컷으로 보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의 MAXXI를 보면, 상부에서 읽히는 선들은 여전히 문자처럼 흐르는 형태를 갖고 있고, 내부에서는 여러 갈래의 동선 선택을 통해 관람자가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공간은 고정된 장면이 아니라 이동·선택·체류를 통해 완성되는 사건이 됩니다. 천장 핀과 보행교, 계단을 대비시키며 구성주의적 화면을 내부에 실제로 세팅하고, 시야가 한 번에 끝나지 않게 만들어 시간의 감각을 공간 속에 심습니다.
그래서 MAXXI는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지"가 흐릿하게 느껴지고, 그 흐릿함이 곧 건축적 시간으로 작동합니다.
BMW 센터 평면 — 드로잉의 환영을 현실에 주입하다
'표현(드로잉)은 본질적으로 환영(illusion)이다'라는 태도가 또 하나의 핵심입니다. 원근법, 액소노메트릭, 아이소메트릭은 모두 2D 위에 3D를 믿게 만드는 장치인데, 자하는 이 환영을 그냥 '그림'으로 두지 않고 평면 자체에 주입해 버립니다.
독일 BMW 센터 평면에서 보이는 마름모·왜곡된 방 형태는 사실 아이소메트릭 큐브의 착시에서 온 기하입니다. 그녀는 그 착시 도형을 실제 방의 형태로 채택합니다. 결과적으로 도면에서 "왜곡되어 보이던 것"이 현실에서 "왜곡된 공간감"으로 체험됩니다.
비트라 소방서 — 동작이 얼어붙은 형태
비트라 소방서에서는 이 사고가 "동작이 얼어붙은 형태(frozen action)"로 번역됩니다. 화재 출동의 폭발적 긴장감을 건물 자체가 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아래, 벽·캐노피·모서리는 직각을 피하고 비스듬히 꺾이며, 한 시점에서는 날카로운 사선의 덩어리로, 다른 시점에서는 전혀 다른 실루엣으로 읽힙니다.
같은 캐노피가 각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보이는 장면은, 자하가 시점·왜곡·중첩을 통해 공간을 '정지된 조형'이 아니라 '인지가 변하는 사건'으로 다루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녀의 혁명은 결국 회화적 추상 → 드로잉의 환영 → 공간 경험의 시간성을 한 줄로 연결해 건축의 설계 언어를 바꿔버린 데 있습니다.
일본 현대건축 여행ep.8/도쿄 올드머니의 상징 긴자, 에르메스에서 로로피아나, 긴자식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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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대건축 여행 ep.8 — 도쿄 올드머니의 상징 긴자, 에르메스에서 로로피아나, 긴자식스까지
긴자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 중심지이자 일본 공시지가 순위 상위권을 꽉 잡고 있는 동네입니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점잖아 보이지만 오모테산도 이상의 하이패션 브랜드가 밀집해 있으며, 무엇보다 그 건물들 하나하나에 기술력과 상상력이 총동원되어 있습니다. 비즈니스와 관광의 중심지였던 긴자에서 건축물이 어떻게 지역적 특성과 연결되는지, 알고 나면 긴자를 훨씬 더 깊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일본 현대건축 여행ep.8/도쿄 올드머니의 상징 긴자, 에르메스에서 로로피아나, 긴자식스까지
일본 현대건축 여행 ep.8 — 도쿄 올드머니의 상징 긴자, 에르메스에서 로로피아나, 긴자식스까지 긴자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 중심지이자 일본 공시지가 순위 상위권을 꽉 잡고 있는 동네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긴자에 위치한 초럭셔리 부티크 건축물들을 다룹니다.
미키모토 긴자 2 — 누드 빼빼로 공법의 건물
마로니에 게이트 긴자 맞은편, 일본 예물 주얼리 브랜드 미키모토의 긴자 2호점입니다. 외관부터 독특한 이 건물은 만들어진 방식도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건물을 지을 때는 뼈대를 한 층씩 쌓아올리고 살을 붙이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미키모토 긴자 2는 내벽과 외벽이 되는 스킨 두 장을 먼저 세우고, 그 사이에 콘크리트를 부어 굳혀낸 구조입니다. 과자로 비유하면 일반 빼빼로와 누드 빼빼로의 차이입니다.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린 외벽 자체가 구조체로서 건물을 지탱하며, 구조체 사이사이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창들이 밤이 되면 보석처럼 빛납니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제외하고는 반복적인 기둥이 전혀 없는 점은 같은 건축가가 담당한 토즈 오모테산도(현 보테가베네타 산도)와 같은 맥락입니다.
건축 포인트
저층부에 거대한 유리벽을 두는 일반적인 상업 건물과 달리, 이곳은 외부와 적당한 단절감을 형성합니다. '빛나는 보석상자'라는 컨셉과 함께 유동인구가 많은 번잡한 긴자 거리에서 프라이빗하고 넓은 매장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2005년 완공 당시 시인성은 지금보다 훨씬 강렬했을 것입니다.
로로피아나 긴자 플래그십 스토어 — 건축가 아오키 준과 비쿠냐 울
긴자 이시노 탑 사거리 북쪽으로는 각 브랜드가 독자적인 건물을 세워 거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중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로로피아나 긴자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계한 건축가는 아오키 준(青木淳)입니다.
아오키 준은 한국에서의 대중적 인지도는 안도 타다오에 비해 낮지만, 루이비통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루이비통 매장 디자인을 담당한 인물입니다. 긴자에 위치한 두 곳의 루이비통 매장 모두 그의 작업입니다.
비쿠냐 울 색상에서 벽돌을 본 건축가
럭셔리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대체로 브랜드의 DNA를 외관에 직관적으로 드러냅니다. 모노그램 패턴, 시그니처 컬러 등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로로피아나는 로고 플레이를 전혀 하지 않는 브랜드로 유명합니다. 이탈리아 럭셔리의 진정한 클래식을 추구하며 특유의 최고급 소재와 색감으로 팬층을 형성하는 곳입니다.
직관적으로 드러낼 패턴이 없는 상황에서 아오키 준은 로로피아나의 제품들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세계 최상급 섬유 중 하나로 평가받는 비쿠냐(Vicuña)의 색상이 벽돌 색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색깔의 유사성에서 출발했지만, 그는 여기서 건축물의 단단한 물성과 섬유의 극도로 부드럽고 매끄러운 터치를 하나의 파사드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아래쪽에는 비쿠냐 울 색으로 칠해진 루버가 직선적으로 나열되고, 위로 갈수록 흩날리는 스카프의 끝자락처럼 변하는 파사드가 완성되었습니다.
아오키 준의 상상력
그의 첫 루이비통 매장 설계에서는 무아레 효과를 이용한 패턴으로 루이비통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두 장의 단일 패턴이 겹치며 보여주는 이 시각적 효과의 영감은 어린 시절 모기장 두 장 사이로 비치는 노을의 기억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루이비통 긴자 매장 외벽은 모네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인상주의의 아름다움을 건축물에 이식했습니다. 세밀한 유리 가공을 통해 빛의 성질을 포착하여 각도에 따라 입체적으로 변하는 물결 패턴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건축가 노트
아오키 준은 공개 인터뷰에서 항상 자신과 다른 분야의 이야기, 다양한 색다른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단편적인 기억에서 영감을 끌어내 건축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그만의 방식입니다.
메종 에르메스 긴자 — 렌조 피아노와 세계 최초의 면진 유리 외벽
이탈리아 럭셔리의 끝판왕 다음은 프랑스의 끝판왕입니다. 주변 건물들과 달리 길가와 맞닿은 부분이 유리블록으로 뒤덮인 메종 에르메스 긴자는 하이테크 건축의 대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의 작업입니다.
외관은 파리에서 그대로 날아온 듯한 세련미를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일본 전통 등불에서 착안한 컨셉입니다. 에르메스는 건물 설계를 의뢰하면서 트렌드나 시대를 타지 않는 지속적인 존재로서의 건축물을 원했고, 렌조 피아노는 수백 년 전부터 한자리에 있었을 등불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등불 효과를 위한 세계 최초 구조
유리블록들이 만들어내는 등불 같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유리블록들은 모든 층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고정되어 있습니다. 바깥에서 봤을 때 슬라브나 기둥이 최대한 부각되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일본 신사의 오중탑 면진 설계에서 착안했습니다. 오중탑이 중앙 기둥과 부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메커니즘으로 수백 년에 걸쳐 지진을 견뎌왔듯이, 이 건물의 유리벽 또한 각 층마다 외력에 대응하여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지진 하중을 경감합니다. 건축구조에 상용화된 것은 세계 최초라고 합니다.
긴자 식스(Ginza Six) — 전통 히사시에서 출발한 도심 랜드마크
이시노 탑 사거리 남쪽에는 각 브랜드가 독자적인 건물을 세우는 방식 대신, 건물 한 채가 그 모든 역할을 해내는 공간이 있습니다. 여러 건물이 혼재하던 큰 면적을 재건축으로 하나의 건물로 통합한 긴자 식스(G6)입니다.
땅값이 비싼 긴자에서 대로변 1층 매장들에는 독립적인 개성을 가진 파사드를 부여해야 했고, 동시에 기존 거리 환경을 최대한 유지해야 했습니다.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는 일본 전통 출입문 구조인 히사시(庇, 처마)와 노렌(暖簾, 간판 가리개)에서 해법을 찾았습니다.
상층부: 수평 처마(히사시) 구조로 통일성 부여
저층부: 처마에 걸린 노렌들처럼 각 브랜드가 개별적 개성을 드러냄
두 블록 통합 과정에서 기존 골목길을 가운데 터널로 유지 — 보행자 네트워크 보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된 수평 처마는 야간에 주변 빛을 받아 간접광으로 건물 전체에 통일감을 주며 화려함을 연출합니다.
파사드와 내부를 채운 크리에이터들
역할
담당자
건물 설계
다니구치 요시오
브랜드 아이덴티티
하라 켄야(原研哉)
파사드 참여 크리에이터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데이빗 치퍼필드,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피터 마리노 등
공용공간 인테리어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전통 무늬 현대적 이식)
내부 공용공간은 환대라는 컨셉에 맞춰 일본 전통 무늬를 현대적으로 이식한 디자인으로 채워져 있으며, 중앙 천장의 대형 설치 미술이 기간별로 교체되며 공간의 스케일을 드러냅니다. 매장 배치는 의도적으로 지그재그로 틀어 대형마트 같은 공간감을 없애고 긴자 뒷골목을 이리저리 걷는 느낌을 구현했습니다.
건축사 관점 요약
긴자의 하이패션 건축물들은 공통적으로 브랜드 정체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담는 방식을 취합니다. 구조 혁신(미키모토 — 스킨 공법, 에르메스 — 세계 최초 면진 유리벽), 소재에서 건축으로의 번역(로로피아나 — 비쿠냐 울 색채), 전통에서 현대로의 전환(긴자 식스 — 히사시와 노렌). 철근 콘크리트와 유리가 주를 이루는 긴자에서 목재를 구조로 사용한 건물들도 별도로 존재합니다.
도쿄 현대건축 여행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이 시부야, 오모테산도, 신주쿠 같은 화려한 동네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도시의 깊이와 스케일을 함께 보고 싶다면 마루노우치와 긴자 일대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합니다. 이곳은 단순히 쇼핑하기 좋은 번화가가 아니라, 도쿄의 비즈니스 중심지이자 오래된 도시 기억 위에 현대건축이 겹겹이 쌓인 장소입니다.
도쿄 현대건축 여행, 마루노우치에서 긴자까지 보는 리노베이션 건축의 스케일
도쿄 현대건축 여행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이 시부야, 오모테산도, 신주쿠 같은 화려한 동네를 먼저 떠올립니다.
특히 도쿄역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마루노우치, 유라쿠초, 긴자 방향의 흐름은 건축 여행 코스로도 꽤 밀도가 높습니다.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거나 리노베이션하면서도, 그 위에 새로운 상업 공간과 문화 시설을 세련되게 얹어낸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마루노우치에서 긴자로 이어지는 길은 도쿄의 과거와 현재가 가장 압축적으로 보이는 현대건축 산책 코스입니다.
도쿄역 주변이 특별한 이유는 도시의 중심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KITTE, 구마겐고]
도쿄에는 여러 도심지가 있지만, 마루노우치와 긴자 일대는 그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신주쿠나 이케부쿠로가 거대한 유동 인구를 품은 부도심의 느낌이라면, 도쿄역 주변은 일본 경제와 비즈니스의 중심이라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이 지역에는 일본 최초의 백화점이 등장했고, 주요 종합상사 본사도 모여 있습니다. 상업지 기준으로도 높은 가치를 가진 곳들이 밀집해 있어, 거리 전체가 오래전부터 쌓아온 중심지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중심지일수록 새것만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루노우치 주변을 걷다 보면 오래된 건물의 흔적을 남기고, 그 위에 현대적인 고층 건축을 결합한 사례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도시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고급스럽게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일본적인 질감을 은근하게 보여주는 상업 공간
도쿄역 인근의 일부 상업 공간은 여행객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습니다. 무인양품, 카시오, 이세이미야케처럼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가 들어서 있고, 지하에는 라멘 매장, 위층에는 디자인 제품을 소개하는 공간과 전망대까지 배치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현대적인 쇼핑 공간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자세히 보면 층마다 다른 패턴과 질감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기와, 나무살, 다다미처럼 일본 전통가옥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적 감각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듯한 인상입니다.
이런 방식은 과하게 전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방문자가 자연스럽게 일본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만듭니다. 쿠마 켄고식 목재 패턴의 감각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어, 공간 전체가 하나의 부드러운 문화 소개장처럼 읽힙니다.
마루노우치 공간을 볼 때 눈여겨볼 부분
이 지역의 상업 공간은 단순히 브랜드를 모아놓은 쇼핑몰이 아니라, 일본적인 질감과 현대적인 유통 공간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벽의 패턴, 층별 분위기, 전망 동선까지 함께 보면 건축 여행의 재미가 더 커집니다.
애플 마루노우치가 보여주는 절제된 존재감
마루노우치에 있는 애플스토어는 단독 건물 전체를 유리로 감싼 오모테산도 매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만듭니다. 기존 건물의 기저부 일부에 들어선 매장이기 때문에 완전히 독립적인 조형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 제약이 독특한 외관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곳은 애플 디자인팀과 포스터 앤 파트너스가 협업한 공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둥 사이를 둥근 모서리의 알루미늄 프레임과 대형 강화유리로 채운 외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아이폰들이 벽면을 따라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내부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푸른 대나무, 투명한 유리, 절제된 구조가 어우러지면서 애플 특유의 깨끗한 공간감을 만듭니다. 화려하게 장식하기보다 브랜드의 재료와 이미지를 건축 언어로 바꿔 보여주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애플 마루노우치는 건축적 제약을 브랜드 이미지로 바꿔낸 리노베이션형 플래그십 매장입니다.
도쿄 국제포럼은 비용과 스케일 모두 압도적입니다
마루노우치 스트리트를 따라 걷다 보면 도쿄 국제포럼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곳은 라파엘 비놀리가 설계한 대형 컨퍼런스 센터로, 1996년에 문을 연 건축물입니다. 규모와 공사비 면에서 일본 내에서도 손꼽히는 프로젝트로 언급됩니다.
도쿄 국제포럼의 가장 강렬한 장면은 거대한 유리 홀입니다. 외벽 전체가 유리로 구성되어 있고, 아치형 구조물이 천장을 지탱하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배의 뼈대나 공룡의 골격처럼 보입니다. 특히 저녁에는 조명이 구조의 윤곽을 강조해 훨씬 극적인 분위기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 건축물이 단순히 큰 건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도시와 연결되는 방식입니다. 도쿄역과 마루노우치, 유라쿠초역 사이에 놓인 이 거대한 시설은 자칫 도시의 흐름을 막는 벽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대신 건물을 동서로 나누고, 부지 가운데를 길처럼 열어두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통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도쿄 국제포럼은 목적지를 가진 사람뿐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열린 도시 공간이 됩니다.
도쿄 국제포럼은 막대한 유지비와 공사비로 비판적인 시선도 있지만, 건축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도시와 건축이 만나는 방식을 강하게 체감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유니클로 도쿄는 비워내기로 완성한 리노베이션입니다
유라쿠초역을 지나 긴자 쪽으로 향하면 마로니에 게이트 긴자에 위치한 유니클로 도쿄 매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원래 1980년대 백화점이 들어섰던 공간으로, 당시에는 내부가 비교적 폐쇄적인 형태였다고 합니다.
새로운 플래그십 매장으로 바뀌면서 핵심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벽과 천장을 가능한 걷어내고, 건물이 원래 가지고 있던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1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뼈대가 노출되면서 매장은 훨씬 개방적이고 입체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의 차분한 질감은 유니클로가 가진 단정하고 수수한 이미지와도 잘 맞습니다. 여기에 천장 곳곳에 배치된 거울은 공간을 왜곡하고 확장하면서, 단순한 매장을 훨씬 인상적인 경험 공간으로 바꿉니다.
이곳의 재미는 무언가를 많이 더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기존 구조가 가진 힘을 전면에 세우면서 완성됩니다. 리노베이션 건축이 꼭 복잡한 장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긴자 여행은 쇼핑보다 건축을 먼저 봐도 충분합니다
긴자는 고급 브랜드와 화려한 쇼윈도로 유명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건축적으로도 볼거리가 많은 동네입니다. 에르메스, 티파니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건물은 각각의 로비와 파사드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건축적으로 표현합니다.
마루노우치에서 긴자로 이어지는 동선은 단순한 쇼핑 루트라기보다, 도쿄가 오래된 도시의 기억을 어떻게 현대적인 상업 공간으로 바꾸는지 보여주는 길에 가깝습니다. 기존 건물을 보존하고, 구조를 드러내고, 도시 보행 흐름을 살리는 방식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코스는 건축을 전공한 사람뿐 아니라, 도쿄 여행을 조금 다르게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도 잘 맞습니다. 유명 매장을 찍고 이동하는 대신, 건물의 입구, 창의 형태, 내부의 천장, 도시와 이어지는 통로를 천천히 보면 전혀 다른 도쿄가 보입니다.
도쿄의 진짜 매력은 새 건물보다 오래된 것을 바꾸는 방식에 있습니다
마루노우치와 긴자 일대의 현대건축이 흥미로운 이유는 압도적인 스케일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의 건물들은 대부분 도시가 이미 가진 역사와 조건을 전제로 합니다. 낡은 것을 완전히 지우고 새로 세우는 대신, 남길 것과 바꿀 것을 섬세하게 구분합니다.
애플 마루노우치는 기존 건물의 한계를 브랜드의 외관 언어로 바꿨고, 도쿄 국제포럼은 거대한 시설을 도시 통로로 작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니클로 도쿄는 오래된 백화점 공간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며 새로운 개방감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장소들을 따라 걷다 보면 도쿄가 왜 건축 여행지로 꾸준히 언급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화려한 랜드마크만 보는 여행도 좋지만, 도시의 결을 살린 리노베이션 건축을 따라 걷는 여행은 훨씬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설계 공모나 학교 과제 크리틱이 끝난 뒤, 당선작이나 우수작을 보며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투시도나 렌더링 퀄리티는 분명 내가 더 뛰어난 것 같고, 형태적 미감도 내 안이 더 세련된 것 같은데 심사위원들은 투박해 보이는 다른 안에 손을 들어 줍니다. 도대체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당선되는 건축 작품은 따로있다?
설계 공모나 학교 과제 크리틱이 끝난 뒤, 당선작이나 우수작을 보며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보통 건축을 시각적인 결과물로 소비하는 데 익숙합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에서 보는 멋진 파사드, 감각적인 인테리어 사진들이 건축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화려한 이미지 뒤에는 치열한 논리의 싸움이 숨어 있습니다. 심사위원들과 클라이언트가 보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그림이 아니라, 그 그림이 나오기까지 건축가가 쌓아 올린 생각의 빌드업, 즉 프로세스입니다.
결국 좋은 건축 공부란 완성된 결과물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 도출되기까지의 수많은 선택과 판단의 과정을 역추적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완성된 건물 뒤에 가려져 있는 진짜 건축의 과정, 언빌트의 영역을 통해 설계를 보는 눈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1. 평가자의 시선을 읽는 연습: “의도”와 “평가”를 대조하라
설계 실력을 확실하게 늘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평가자의 시선을 읽어야 합니다. 내 설계가 아무리 좋아도 심사위원을 설득하지 못하면 종이 위의 그림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와 평가를 비교해야 합니다.
건축가가 이 땅을 어떻게 해석했고, 어떤 프로그램을 제안했는지, 그리고 전문가들은 그 제안의 어떤 점을 높게 평가했는지를 대조해 보는 겁니다. 이 과정은 마치 정답지와 해설지를 맞춰 보는 것과 같습니다. 단순히 “이 건물이 당선됐다”라는 결과를 외우는 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 건물의 매스 계획은 주변 맥락과의 조화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동선 계획에서는 다소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처럼 구체적인 심사평을 도면과 함께 소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공 건축에서는 화려함보다 주변과의 연계가 더 중요하구나 같은 실무 감각, 즉 당선의 논리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2. 현실 감각을 익히는 연습: 도면의 이상과 사용자의 현실
논리를 배웠다면 그다음은 현실 감각을 익힐 차례입니다. 도면 위에서는 완벽해 보였던 공간이 실제로 지어졌을 때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건축가에게 가장 아프고 잔인한 공부이지만, 동시에 가장 확실한 성장 동력이 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수요가 급증하는 동물 친화 시설을 생각해 봅시다. 도면상에서는 동물과 인간의 자연스러운 교감을 위해 벽을 없애고 개방감을 주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실제 이용자는 동물의 짖는 소리나 냄새 때문에 그 개방감을 극심한 스트레스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시각적 연결을 의도했지만 운영자는 기능적 분리를 원했던 것입니다.
생활 거점형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가는 지역 주민의 커뮤니티를 위해 로비를 넓히고 층고를 높였지만, 실제로는 냉난방 효율이 떨어져 겨울에는 춥고 운영비 부담으로 방치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건축가의 이상과 사용자의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거대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실력 있는 건축가란 이 간극을 미리 예측하고 설계 단계에서 줄여 나가는 사람입니다.
3. 문제는 자료가 없다: 프로세스와 이후를 묶어 보여주는 아카이브의 부재
문제는 앞서 말한 두 가지 공부, 즉 심사평 분석과 사용자 후기 분석을 개인이 수행하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보통 완성된 건물의 예쁜 사진만 봅니다. 잡지와 미디어는 승리만 기록할 뿐, 그 과정에서의 갈등이나 준공 후 시행착오는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공모 당선작 도면을 구하는 것부터가 난관입니다. 운 좋게 구한다 해도 심사위원들의 구체적 코멘트가 담긴 심사평은 공공기관 사이트 어딘가에 박혀 있어 찾기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준공 후 1~2년이 지난 시점에 직접 찾아가 “이 건물 쓰기 편하세요?”라고 인터뷰하며 자료를 모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멋진 결과물은 넘쳐나는데,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프로세스와 이후의 이야기를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아카이브가 없었던 겁니다.
4. 해답의 한 사례: 마시라이드 ‘언빌트’ 시리즈
그런데 최근, 이 집요한 교차 검증을 대신 수행해 한 권(정확히는 두 권)의 책으로 엮어낸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바로 마시라이드의 ‘언빌트(Unbuilt)’ 시리즈입니다.
이 책은 기획부터 설계, 시공, 준공, 그리고 사용까지 건축의 전 생애주기를 기록합니다. 구성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합니다. 단순히 도면만 싣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주요 포인트와 심사평을 배치해 “이 도면의 어떤 부분이 평가자에게 어떻게 읽혔는지”를 정밀하게 보여줍니다.
여기에 당선자 인터뷰를 더해 공모 당시 건축가가 어떤 전략을 세웠는지도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또한 준공 후 실제 운영자 인터뷰를 가감 없이 실어, “햇살이 들어와서 너무 좋아요” 같은 칭찬부터 뼈아픈 지적까지 모두 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건축가의 의도–심사위원의 평가–사용자의 현실을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에피소드 파트에는 건축가의 짧지만 진솔한 에세이가 실려 있어, 도면 뒤에 숨겨진 설계자의 고뇌와 철학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5. 이번 언빌트 시리즈가 다루는 두 주제
이번에 텀블벅을 통해 공개되는 언빌트 시리즈는 동물 친화 시설과 생활 거점형 도서관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선보입니다. 반려동물이 가족이 된 시대, 건축은 동물의 감각을 어떻게 공간으로 번역해야 하는지. 정숙함만을 강요받던 도서관이 어떻게 시끌벅적한 동네의 거점이 되는지. 변화의 최전선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작품집이 아닙니다. 해당 유형의 시설을 기획하거나 설계해야 하는 실무자에게는 실패를 줄여 줄 지침서이고,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프로세스를 배우는 교과서입니다.
건축은 완성된 모습만 남지만, 그 완성품을 지탱하는 힘은 사실 사라져 버린 과정 속에 있습니다. 결과만 소비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치열한 논리와 선택의 과정까지 소장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밤을 세우며 도면과 씨름하고 있을 모든 건축인들에게, 이 책이 든든한 동료이자 멘토가 되어 줄 것입니다. 텀블벅 펀딩을 통해 여러분의 서재에 가장 깊이 있는 건축 기록을 채워 보시기 바랍니다.
충청남도가 ‘2045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공공건축물에 목재 이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충청남도가 ‘2045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공공건축물에 목재 이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충남도는 6월 30일(일), 서울에 위치한 국가산림위성정보활용센터에서 도 및 시군 공공건축 업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목재 이용 건축 우수사례 견학’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방문한 국가산림위성정보활용센터는 2023년 9월 개소한 산림청 산하 기관으로, 산림위성 지상국 시스템 구축과 위성정보 활용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이 건축물은 2022년 경북·강원지역 대형산불 당시 피해를 입은 소나무를 재가공해 구조재와 내외장재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날 견학에 참여한 참석자들은 건축 설계를 담당한 ㈜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 관계자로부터 산불 피해목의 건축자재 활용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센터 관계자를 통해 건축물 시공 과정과 운영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 현장 견학을 진행했다.
충남도는 공공건축 업무 담당자의 목재 활용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목재 건축의 친환경성과 공간적 장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2023년부터 공공건축 우수사례 견학을 추진해왔으며, 이번 견학은 네 번째다.
도 관계자는 “충남도는 2022년 ‘충남 녹색건축물 설계기준’을 제정하고, 2023년 개정을 통해 연면적 500㎡ 이상의 공공건축물에 목구조 방식을 권장하고 있다”며, “공공건축물 건축 시 목재 이용 활성화를 통해 탄소중립경제특별도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케이디우드테크의 탄화목 프리미엄 찬넬 01이 사용된 KD수락휴 별빛정원숙소 서울 노원구 수락산 자락에 위치한 ‘수락휴 트리하우스’가 오는 지난 7월 17일 정식 개관했다.
케이디우드테크의 탄화목 프리미엄 찬넬 01이 사용된 KD수락휴 별빛정원숙소
서울 노원구 수락산 자락에 위치한 ‘수락휴 트리하우스’가 오는 지난 7월 17일 정식 개관했다. 총 면적 약 9,800㎡ 규모로 조성된 이 공간은 서울 최초의 도심형 자연휴양림이자 국내 첫 공공형 트리하우스 숙소로,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통해 도심 속 특별한 휴식처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총 18동 25객실로 구성되며, 최고 14m 높이의 트리하우스 동과 더불어 본관 라운지, 방문자센터, 불멍존, 숲 명상 데크 등 다채로운 체험형 공간이 함께 마련된다. 전체 설계는 자연지형을 해치지 않는 건축 방식으로 잘 알려진 건축사사무소 53427이 맡아, 공공성은 물론 자연 친화적인 공간 철학을 구현했다.
‘모든 것은 숲으로부터 온다’는 컨셉 아래, 건축에 사용된 자재 역시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외장재에는 케이디우드테크의 친환경 고열처리 목재 브랜드 ‘볼케이노 탄화목’ 시리즈가 주로 적용됐다. 특히 건물 외벽과 테라스 천장에는 ‘뉴송 탄화목 프리미엄 찬넬01’이 사용되어, 방부제 없이도 우수한 내구성과 형태 안정성을 자랑하며 숲과 어우러지는 질감과 색감을 구현했다.
실내 본관 천장에는 ‘KD 사운드메이트 어쿠스틱 클릭루버시스템’이 적용되어 정숙하고 따뜻한 공간감을 형성하며, 시공 편의성과 인테리어 효과를 동시에 만족시켰다. 또한, 본관 로비 및 화장실 입구 벽면에는 ‘오동나무 프라임우드 트랜디션 블랙브러쉬’ 루버가 포인트 자재로 쓰여, 모던하면서도 깊이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케이디우드테크는 원목의 본질을 살리면서도 국내 친환경 공정을 통해 제작한 건축 자재로, ‘공간을 자연으로 감싸는’ 철학을 실현해왔다. ‘수락휴 트리하우스’는 소형 건축과 감성 건축이 결합된 사례로서, 탄소중립 시대에 걸맞은 자연 회귀형 힐링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위로를 찾는 이들에게 ‘수락휴 트리하우스’는 단순한 숙소를 넘어, “숲에서 태어나, 나무 위에 머물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숙소 예약은 산림청 공식 플랫폼 ‘숲나들e’를 통해 가능하다.
건축사법 제20조에서 정한 업무상 성실의무 및 그 위반에 따른 건축주의 재산상 손해배상책임의 주체로 정한 건축사는 설계 등 계약 당사자로서의 건축사에 한정되지 않는다(소극).
반면, 건축법상 설계자는 시공자 및 건축주 등과의 계약 기타의 방법으로 독립한 법인격을 지닌 업무주로서의 설계자를 의미하며, 계약 당사자 아닌 개인 건축사는 건축법 제19조의2 제3항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건 경위 (전문)
【원고, 피상고인】
【피고, 상고인】
【원심판결】
서울고법 2008. 8. 27. 선고 2006나63145 판결
【주 문】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상고이유를 본다.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원심은 그 채택증거를 종합하여, 원고는 2004. 10. 25. 이 사건 건물 증축공사의 설계 등에 관한 업무를 보수 4,000만 원, 납품기일 2004. 12. 20.까지의 조건으로 아이서비스 주식회사(이하 '아이서비스'라고만 한다)에게 도급을 주었고, 건축사 면허를 보유하지 않은 아이서비스는 주식회사 종합건축사사무소 도우건축(이하 '도우건축'이라고만 한다)에게 위 설계에 관한 용역을 대금 3,600만 원(부가가치세 포함하여 3,960만 원)에 하도급을 주어 도우건축의 대표이사이자 소속 건축사인 피고가 위 설계업무를 맡아 이를 완성한 사실, 도우건축으로부터 위 설계도면을 제출받은 아이서비스는 원고에게 2004. 11. 11. 계획설계도면을, 2004. 12. 21. 실시설계도면을 각 납품하였고, 원고는 위 설계도면에 기초하여 2004. 12. 9. 건축허가를 받은 다음 2005. 3. 4. 주식회사 프라임(이하 '시공사'라고 한다)에게 위 건물 증축공사를 완공일을 2005. 7. 3.로 정하여 도급한 사실, 원고는 공사의 착공신고를 위해 설계 건축사의 면허번호 등이 필요하자 2005. 3. 15. 아이서비스의 주선으로 도우건축과 사이에 편의상 계약체결일을 2004. 11. 3., 계약금액을 2,600만 원으로 하는 하도급계약서를 작성하여 착공신고를 한 후 공사를 진행하던 도중 위 설계도면이 공사현장과 맞지 않아 2005. 4. 4.경부터 시공이 불가능해진 사실, 원고가 납품받은 이 사건 설계도면에는 주차장 13번 주차구역의 주차길이와 구 건물 치수의 오차, 1, 2번 주차구역 지하층고 부족 및 경사로 문제 등 공사현장이나 관계법령에 부합하지 않는 하자가 있었고, 이에 시공사와 원고가 공사감리자의 동의를 얻어 2005. 5. 7.부터 2005. 7. 25. 사이에 피고에게 서면으로 그 보완을 요청하자, 피고가 2005. 7. 29. 시공사에게 일부 수정설계도면을 제공하였지만 여전히 시공상 문제점이 보완되지 아니하였고, 이를 이유로 2005. 8. 30.경 공사감리자가 감리를 중단함으로써 관할 구청이 2005. 9. 6. 위 공사의 중단조치를 취한 사실, 원고는 그 후 피고가 원고에게 보완설계도면을 교부하지 않자 2005. 11. 11.경 주식회사 건축사사무소 이데아플러스와 사이에 위 설계도면의 하자를 수정하는 내용의 보완설계계약을 체결한 다음 2005. 12. 13. 새로 작성, 제출받은 설계도면으로 건축허가를 받아 시공을 계속한 사실 등을 인정하였다.
원심은 위 각 인정사실에다가 그 판시와 같은 '건축법' 및 '건축사법'의 각 규정을 보태어, 이 사건 설계도급계약이 원고와 도우건축 혹은 피고와 사이에 직접 체결된 일이 없고 단지 착공신고 과정에서 원고와 도우건축 사이에 위 설계하도급계약이 체결되었을 뿐이라 하더라도 실제 설계자로서 건축사인 피고가 '건축법' 등을 위반하여 설계도면을 작성하고 원고 및 시공사의 적법한 설계변경요청에 불응한 것은 '건축법' 제19조의2 제3항, '건축사법' 제20조 제1항 위반의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피고는 '건축사법' 제20조 제2항에 따라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할 것인데, 피고가 2005. 7. 25.까지 원고로부터 설계도면 보완요청을 받고 이에 응하였으면 2005년 8월 말까지 보완설계도면을 원고에게 교부할 수 있었음에도 이에 불응하여 원고가 이데아플러스에게 새로 설계를 의뢰하게 되었으므로, ① 원고가 이데아플러스에게 지급한 보완설계대금 2,970만 원 중 적정액으로 평가되는 990만 원, ② 원고가 이데아플러스로부터 보완설계도면을 수령한 2005. 12. 13.까지 3개월 반의 공사지연기간 중 원고가 구하는 약 2개월간 임대수입상실액 42,284,541원 등 합계 52,184,541원에서 피고 책임비율 50%에 해당하는 26,092,270원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한편 원고와 도우건축 사이의 하도급계약서에 도우건축의 설계도면 교부의무를 원고의 대금지급의무보다 선이행의무로서 규정하고 있는 이상, 피고가 위 보완설계도면을 작성하고 도우건축이 이를 계약관계에 있는 아이서비스에게 제공했지만 원고가 아이서비스에 대한 보수잔금 800만 원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서비스가 원고에게 위 변경설계도면을 교부하지 않은 것이어서 피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피고의 주장은 적법한 면책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판단 — 건축 실무 영향
1
건축법상 설계자 개념 제한: '건축법'상 설계자는 독립한 법인격을 지닌 업무주로서의 설계자를 의미하며, 개인 건축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원심이 건축법 제19조의2 제3항을 피고의 손해배상 근거로 든 것은 법리 오해이다.
2
건축사법상 성실의무 주체 범위: 건축사법 제20조의 업무상 성실의무 및 손해배상책임의 주체는 계약 당사자인 건축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하도급 설계자도 성실의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3
보완설계도면 교부 경로 문제: 피고가 2005. 7. 12.경 보완설계도면을 작성하여 하도급자인 아이서비스에게 납품한 이상, 아이서비스가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원고에게 교부하지 않아 발생한 손해는 피고의 건축사법 위반행위로 볼 수 없다.
4
편의적 하도급계약서 해석: 착공신고의 편의상 작성된 하도급계약서를 근거로 직접적 계약관계가 성립한 것처럼 본 원심 판단은 잘못이다.
주의사항 및 실무 유의점
건축사·건축주 필수 확인사항
설계 하도급 구조에서 실제 설계자인 건축사도 건축사법상 성실의무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하도급 설계 수행 시 설계도면의 품질 및 관계법령 준수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설계변경 요청이 있을 경우 보완설계도면을 계약 체계를 통해 건축주에게 실제로 전달되도록 확인해야 하며, 중간 계약자의 교부 거부로 인한 책임 전가 여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건축법 제19조의2 제3항의 설계변경의무는 계약 당사자인 '법인격 있는 설계자(업무주)'에게만 적용되며, 개인 건축사에게는 직접 적용되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건축사법 제20조의 손해배상책임은 계약 당사자 여부와 무관하게 실제 설계를 수행한 건축사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 면허 및 업무 수행 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원심의 인정사실에 의하더라도 원고와 도우건축 사이의 하도급계약서는 원고와 아이서비스 사이의 당초 도급계약 및 아이서비스와 도우건축 사이의 하도급계약에 따른 설계도면의 납품이 모두 완료되고 아직 설계도면의 하자가 문제되기 이전의 시점에서 계약일자와 대금을 사실과 달리하여 단지 착공신고의 편의상 작성된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원고가 임의로 지급을 거절한 잔금 800만 원(부가가치세를 포함하면 880만 원)을 뺀 나머지 보수를 원고가 아이서비스에게 지급하였음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그럼에도 원심이 위 편의적인 하도급계약서 작성을 근거로 마치 양자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성립한 것처럼 본 것은 잘못이라 할 것이다.
또한, '건축법'은 건축물의 대지·구조 및 설비의 기준과 건축물의 용도 등을 정하여 건축물의 안전·기능·환경 및 미관을 향상시킴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 및 감리자 등 업무주인 각 건축관계자를 적용대상으로 하여 상호간의 책임에 관한 내용과 범위를 규정한 법률이라 할 것이므로( 대법원 2005. 12. 22. 선고 2003도3984 판결 등 참조), 후술과 같이 계약 당사자 아닌 개인인 건축사를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는 '건축사법' 상 건축사 개념과 달리 '건축법' 상 설계자는 시공자 및 건축주 등과의 계약 기타의 방법으로 독립한 법인격을 지닌 업무주로서의 설계자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건축법' 제2조 제1항, 제5조 제1항, 제9조의2 등 참조), 이는 후발적 사유에 의한 건축설계 변경의 필요성을 예정한 규정으로서 그 설계변경에 따르는 추가설계대금이나 하자보수, 손해배상 기타 권리관계의 정산이 요구되는 '건축법' 제19조의2 제3항의 해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이 이 사건 설계계약상 당사자 지위에 있지 아니하는 피고의 불법행위 및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근거로 '건축법' 제19조의2 제3항의 규정을 든 것은 위 관련 법령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다.
상고이유 중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주장은 이유 있다.
한편, 원고가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의 또 다른 근거로 들고 있는 '건축사법' 제20조 제1항에 관하여 보면, '건축사법'은 건축사의 자격과 그 업무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건축물의 질적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로써, 위 법에서 정하는 건축사의 자격규정 및 전문가로서의 건축사의 지위 등에 비추어 '건축사법' 제20조에서 정한 업무상 성실의무 및 그 위반에 따른 건축주의 재산상 손해배상책임의 각 주체로 정한 건축사는 설계 등 계약 당사자로서의 건축사에 한정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심이 인정한 원고의 손해는 원고의 주장처럼 2005년 8월 말부터 2005. 12. 13.까지 피고가 위 설계도면 보완요청에 불응하였음을 전제로 발생하는 손해라 할 것인데, 앞서 본 바와 같이 '건축법' 상 설계자의 지위에 있지 아니한 피고에게 위 설계변경의무가 인정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피고의 항변과 같이 피고가 2005. 7. 12.경 보완설계도면을 작성하여 소속 회사인 도우건축의 하도급자인 아이서비스에게 납품한 이상(을 제6호증 등 참조), 설령 그 후에 아이서비스가 계약관계에 있는 원고의 보수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원고에게 이를 교부하지 않는 바람에 위 원고 주장의 손해가 발생하였다 하여 그것이 '건축사법' 제20조 제1항에 반하는 피고의 위법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이 이 사건 손해배상책임의 성립 근거로 '건축사법' 제20조의 규정을 든 것은 위 관련 법령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다.
상고이유 중 이 점을 지적하는 취지의 주장도 이유 있다.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좀 더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매일일보 = 윤하늘 기자 | 건설업계가 새 정부에 ‘건설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이 적극 추진돼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건설·부동산 부양을 위한 ‘세제 개편’은 물론, 재개발과 재건축, 리모델링 사업의 균형잡힌 활성화 정책을 통한 ‘일감’ 확보가 우선돼야한다는 게 공통적인 입장이다.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각 건설사들은 협회 등을 통해 지방 미분양 주택 해소와 다주택자 규제 완화, 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활성화 등을 통한 민간 주택공급 확대, 수요 회복 위한 대출한도 확대,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을 요청했다.
대한건설협회가 최근 양당 의원들에게 공유한 '차기 정부에 바라는 건설정책 과제'를 담은 정책제안을 보면 △미분양 아파트 취득세 50% 경감 △5년간 양도세 전액 감면 △미분양 아파트 매입 규모·면적 확대 및 매입 가격 현실화 등의 세제 감면 및 정책 개선을 제안했다. 또 △1가구 2주택 보유자에 대한 세제 완화 △분양가 상한제 전면 폐지 △공공주택 50만가구 공급 등도 건의했다.
특히 인프라 투자 활성화를 위해 매년 30조원 이상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편성하고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을 현실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산업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개정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주택협회도 '민생 경제 회복과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부문 정책과제'를 발간하고 주요 정당에 보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다주택자 세제 중과 폐지 △지방 미분양주택 세제 지원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 △도심 주택공급 강화를 위한 '주택정책처' 설치 △정비사업 속도 제고 방안 △아파트 민간임대등록(단기·장기) 재도입 △영업정지에 따른 선분양 제한 완화 △중대재해처벌법 합리적 개선 △모듈러주택 공급 활성화 △시니어주택 공급 활성화 등이 담겼다.
공사비 분쟁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도시분쟁조정위원회의 심사·조정 대상’을 확대해달라고도 했다. 영업정지에 따른 선분양 제한 기간을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현행법상 건설사가 6개월 이상 영업정지를 받을 경우 선분양이 2년 동안 제한된다. 분양대금으로 공사를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대한주택건설협회도 △미분양주택 취득시 양도세 한시 감면 및 취득세 중과 배제 △아파트 매입임대등록 재시행 △대출규제 완화 및 금리 인하 △중도금집단대출 잔금전환 개선 등을 요청했다. 아울러 △상업지역 내 주상복합건축물 상업비율 개선 △기업형 임대사업자 주택도시기금 지원 연장 재시행 △민간건설임대주택 조기 분양전환 허용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 긴급지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인정 감정평가 현실화 및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도심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서 재개발과 재건축, 리모델링 사업의 균형 잡힌 제도 개선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개선, 용적률·공공기여 비율 차등, 리모델링 기준 완화, 과도한 입찰보증금 부담 경감 등도 제안했다. 재개발과 재건축의 경우 기본계획, 정비계획,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을 동시에 수립하고 통합심의도 가능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의 경우 제도개선의 요청도 있었다. 공동주택 리모델링은 기존 주택의 골조를 일부 사용하기 때문에 건설 폐기물과 탄소배출량이 재건축과 재개발 사업 대비 현저히 적다.
특히 고(高)용적률 단지가 많은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신속한 주택 공급을 위해서는 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같이 균형 잡힌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는 게 건설업계 입장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해서는 △리모델링 고유 법령 체계 구축 △주택법 개정안 신속 통과 △수직증축 안전성검토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동산 및 건설경기가 회복될 수 있는 정책들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건비와 원자재값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분쟁도 지속되고 있는 데다, 공공발주 사업도 줄어들고 있는 만큼 각종 정책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지난 정부에서 재건축 활성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상대적으로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은 ‘홀대’받는다는 여론이 나타났고, 해당 사업의 조합원과 토지등소유자 간 갈등이 커지며 조합과 시공사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공급 활성화를 위해 사업 추진의 장벽을 낮추고 시간을 단축할 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