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성남시 빚 다 갚고 '사이다 행정'…위기마다 '극적 생환'

작성일: 2025-05-20

[앵커]

대선 후보 연속 기획, 오늘은 주요 후보들의 정치 역정을 되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오랜 기간 비주류로 통했던 이재명 후보가 어떻게 정치적 위기를 넘어서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자리 잡게 됐는지, 김안수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이재명 후보는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낙선했습니다.

이후엔 정동영 캠프에서 부대변인을 맡았습니다.

[정동영/더불어민주당 의원 :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극복한 개천에서 용 난 사람이다. 시민운동가였고, 변호사였는데 정치적 야망을 가진 인물로 봤죠.]

첫 승리는 2010년 지방선거였습니다.

당선 직후 채무 지급정지 선언,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성남시의 재정난을 일시정지시켰습니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을 연임하면서 6600억이 넘는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그리고 무상 교복,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등 주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를 시작했는데, 만 24세 청년들에게 100만원씩을 지급하는 청년배당 제도가 관심을 모았습니다.

[김경서/2017년 청년배당 수급자 : 취업 준비하는 데도 돈이 들잖아요. 대학생 신분으로 넉넉지 않으니까 안경점 가서 안경을 맞춘다든지. 그때가 딱 그런 것들이 필요했던 나이여서…]

2017년 대선 경선에선 3위에 그쳤지만,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친문' 전해철 전 의원을 꺾고 경기도지사가 됐습니다.

도지사 시절 별명은 '사이다'였습니다.

계곡에서 수십년간 자리 값을 받으면서 바가지 장사를 해온 상인들과 담판을 지은 건 지금도 이 후보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회자됩니다.

2022년 대선에선 역대 최소 격차인 0.73%p차로 패했습니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2022년 3월) : 모든 것은 다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패배도, 민주당의 패배도 아닙니다.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습니다.]

1년 뒤 검찰은 성남FC 사건 등을 이유로 이 후보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한 차례 부결 끝에 체포동의안이 통과됐습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해 위기를 넘겼지만, 이듬해엔 부산에서 피습을 당했습니다.

[강훈식/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총괄본부장 : 물리적 테러, 정치적 압박, 그리고 검찰을 통한 또 사법부까지 나서서 총체적으로 (이 후보를 압박)했고, 그 과정에서 계엄이라는…]

이 후보는 12·3 내란 사태 당시 라이브 방송을 켜고 국회로 와 비상계엄 해제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대선 국면, 이 후보는 단 한 번도 여론조사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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