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의 압박 속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가시화하고, 이란이 이례적으로 ‘한글’ 메시지를 통해 한국의 파병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물류 차질과 손실이 누적되는 가운데 유가 급등까지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한층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의 파병이 현실화할 경우 이란이 한국 선박 등을 상대로 추가 통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해협 운항 정상화 시점을 가늠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이에 학계에서는 파병이 국익을 위한 결정이라 하더라도 파병의 목적과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국내 기업과 산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8일 정부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압박에 한국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는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 충돌이 최근 재격화하는 데다, 국민적 우려 여론이 커지자 투입 군사자산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병 가능성에, 이란 ‘한글 경고’
한국의 파병 가능성이 가시화하자 이란은 이례적인 ‘한글’ 경고 메시지를 통해 경고에 나섰습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7일(현지시각) SNS에 ‘위험한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진과 함께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업계는 한국의 파병 가능성 등 중동 사태가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한국의 파병이 결정될 경우 이란의 추가 통제 가능성 등 호르무즈 해협 운항 정상화 시점을 가늠하기 더 어려워진 까닭입니다. 더욱이 중동 사태 장기화에 따라 산업계 전반 손실이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 급등 등 커지는 불확실성을 우려하며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해운업계의 경우 운임 부담에 더해 사태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습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된 상황에서 파병까지 현실화 할 경우 중동 노선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컨테이너선사들도 이미 중동 서비스가 중단된 상황이라 일정 부분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유조선 등 중동 의존도가 높은 선사들은 대체 항로와 화주 확보가 쉽지 않아 봉쇄가 더 길어질 경우 타격이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군 파병에 따른 중동 사태 격화 가능성 등 급등하는 유가도 산업계 전반 불안 요인입니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 간 군사충돌이 최근 재격화함에 따라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산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형국입니다. 8일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1월물 브렌트유는 이날 오후 1.45% 오른 배럴당 98.45달러, 10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6% 오른 93.91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여기에 중동 사태 갈등이 깊어지게 되면 브렌트유와 WTI가 모두 100달러 선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산업계 “불확실성 예의주시”
정유업계는 중동산 원유 수급이 여의치 않은 데다 유가 상승에 따른 불확실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정세 불안이 더 고조되는 가운데 유가까지 치솟으며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며 “수급 다변화 방안을 여러모로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으로 관계 당국과 긴밀히 소통하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항공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유류비는 항공사 영업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유가 급등에 따른 실적 부담이 큰 까닭입니다. 특히 일부 항공사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음에도 사태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 한숨만 내쉬는 분위기 입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중동 사태가 ‘온 고잉’ 이슈로 당장 최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파병에 따른 사태 확산 등 장기화 우려가 크다”며 “항공업계가 중동 전쟁 초기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유가에 따른 실적 부담 가능성이 큰 탓에 상황을 유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석유화학업계도 중국의 저가 범용 제품 공세로 인해 주력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 급등은 부담입니다. 다만, 업계 전반 공장 가동률을 50%가량까지 낮춘 상황으로 당장의 충격은 제한적이지만, 장기화 파장을 조심스레 관망하는 분위기가 읽힙니다. 특히 지난 연말 비교적 싼값에 사들인 원료로 만든 제품을 공급난 국면에서 비싸게 파는 ‘래깅’ 효과로 수익성이 개선됐지만, 유가 급등으로 이 같은 효과가 상쇄돼 하반기 실적 악화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전쟁 초기에는 공급 부족 우려로 제품 가격이 오르고, 기존에 낮은 가격에 확보한 원료가 투입되면서 수익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며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수요는 점차 안정되는 반면 고유가 상황에서 매입한 원료의 부담은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어 하반기에는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기업 보호장치 마련돼야”
학계에서는 파병에 따른 중동 사태 격화 및 장기화 가능성이 큰 까닭에 우리 기업을 보호할 안전장치 마련이 선제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 양국에 한국 기업의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방향성을 설정하고, 이를 위한 외교적 협상력이 우선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과 이란에 대해 상선 중심의 보호 등 전쟁을 목적으로 한 파병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설명하고, 한국 기업과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 마련을 외교적 협상력 등을 통해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중동 사태 불안이 장기화하는 만큼 공급망 다변화와 새로운 시장 확보를 위한 대안 마련이 더욱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