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 빛을 통과시키는 경계
유리는 묘한 재료다.
그 자체로는 존재감이 없지만,
그 위를 지나가는 빛과 시선으로
공간의 인상을 바꿔버린다.
벽은 나누고,
문은 막지만,
유리는 흐르게 한다.
사람의 동선과 눈길,
채광과 그림자,
그 모든 걸 막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경계를 만든다.
그래서 유리는 ‘나누는’ 재료가 아니라
‘연결하는’ 재료에 가깝다.
현관과 거실 사이,
사무실의 회의실과 오픈 데스크,
욕실과 침실 사이의 채광 벽.
이 모든 곳에서 유리는
‘닫지 않으면서 나누는’ 기묘한 역할을 한다.
유리는 빛의 흐름을 바꾼다.
투명한 유리는 시선을 확장하고,
불투명한 유리는 그림자를 흐리게 만들고,
반투명의 유리는
사람을 의식하게 하되, 긴장을 풀어준다.
그리고 유리는 외부와 내부의 사이에서
계절을 연결한다.
겨울의 차가움을 막고,
여름의 열기를 걸러내며,
아침 햇살과 저녁의 반사를 모두 통과시킨다.
그 과정에서 유리는
자신의 감정은 말하지 않지만
공간의 기분을 조절한다.
우리가 유리를 쓸 때는
항상 이런 질문을 한다.
“이 유리는 보여야 할까, 감춰야 할까?”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흐려야 할까?”
그 질문은 결국
공간의 의도를 드러내는 질문이기도 하다.
유리는 존재감 없는 듯하면서
가장 많은 걸 보여주는 재료다.
투명하지만 완전히 투명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늘 반응한다.
그래서 유리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공간을 설계하는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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