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는 낭비인가, 여유인가

작성일: 2025-05-27 10:21

죽은 공간이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공간

도면을 검토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있다.

“여기 복도, 너무 낭비 아닌가요?”

실제로 면적이 한정된 설계일수록

복도는 줄이고 싶은 대상이 된다.

동선을 최소화하고, 기능을 압축하고,

효율적인 평면을 만들기 위해

복도는 자주 지워진다.

하지만

복도는 단지 '이동의 경로'가 아니다.

복도는 방과 방 사이의 숨,

공간과 공간 사이의 여백이다.

그리고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거리이기도 하다.

모든 방이 바로 거실로 열려 있다면

그 집은 편리할 수는 있어도

지나치게 노출된 느낌을 준다.

문을 열면 곧바로 가족이 보이고,

한 발짝에 모든 공간이 닿는 구조는

심리적으로는 조금 빠듯하다.

복도는

그 빠듯함을 풀어주는 공간이다.

움직이는 동안 생각할 수 있고,

서로를 마주치지 않을 수 있으며,

잠시 멈출 수 있다.

좁더라도, 길더라도

그 안에 조명이 부드럽게 들어오고

작은 선반이나 틈이 있다면

그 복도는 비로소

기억에 남는 ‘공간’이 된다.

복도가 길다는 건

그만큼 여유를 설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이와 틈을 줄 때

집은 좀 더 편안해진다.

효율이라는 단어 앞에서

복도를 지우기 전에

그 공간이 줄 수 있는 감정과 여유를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좋은 집은

목적지만이 아니라

그 사이를 걷는 길도 기억에 남는다.

#복도의의미 #공간의틈 #평면의여유 #건축의완충 #chi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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